재난지원금 때문에… 얼굴 붉히는 대림동
입력 2010-09-30 18:41
지난 21일 서울 지역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세입자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놓고 조선족 세입자와 한국인 집주인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조선족 세입자는 재난지원금을 자신들에게 나눠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지만 집주인들은 조선족 세입자가 지원금을 받고도 제대로 수리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서울 대림동의 반지하 주택에 60대 노모와 함께 사는 조선족 김명석(가명·40)씨는 이번 집중호우로 부엌과 방에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는 피해를 입었지만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집주인이 대신 재난지원금을 받았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구호 대상을 ‘국민’으로 제한함에 따라 국적 미취득자는 지원금을 수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난지원금을 받은 집주인은 “침수 피해를 복구하는 데 100만원도 부족하다”며 김씨 모자에게는 한푼도 주지 않았다. 김씨는 “10평도 안 되는 방의 장판을 교체하고 도배하는 데 30만원도 안 들 것”이라며 “옷장과 이불, 전기밥솥이 다 망가졌는데 방만 수리해 준다는데 솔직히 서운하다”고 털어놨다. 중국노동자협회 최경자 회장은 “단순히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차별과 편견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조선족 세입자를 두고 있는 박모(68)씨는 세입자가 재난지원금을 받고도 방을 수리하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박씨는 “세입자가 동 주민센터로부터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받고도 방을 수리하지 않아 심하게 다퉜다”고 말했다. 조선족 세입자를 둔 김모(62·여)씨는 “재난지원금만 받고 집수리를 하지 않은 채 방을 빼달라고 떼쓰는 조선족 세입자도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대림동에서 10년 가까이 장판 교체와 도배 사업을 하고 있는 장모(65)씨는 “공사하러 다니다 보면 지원금 때문에 주민 사이에 감정이 상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며 “지원금 사용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지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철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지원금 문제로 집주인과 싸운 뒤 동사무소에 찾아오거나 울면서 전화를 거는 조선족이 종종 있지만 집주인과 잘 상의해 보라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도 “지원금과 관련한 분쟁이 있을 경우 원만한 합의에 이르도록 설득하고 있지만 지원금을 어떻게 쓰라고 지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