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우리말 아세요? ‘올제’입니다
입력 2010-09-30 21:24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 펴낸 장승욱 작가
‘그제’ ‘어제’ ‘오늘’ ‘모레’ ‘글피’는 우리말인데 흔히 쓰는 ‘내일’은 유독 한자말이다. ‘내일’의 우리말은 뭘까? 정답은 ‘올제’. 나그네가 추위를 막고 짐승을 쫓기 위해서 피우는 불은 ‘황덕불’, 짚이나 잎나무를 작게 묶은 뭉치에 불씨를 옮겨 당긴 불은 ‘불꾸러미’, 모닥불이나 화톳불에서 튀기며 쏟아져 내리는 불꽃은 ‘불보라’나 ‘불소나기’라고 한다. 어느새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러나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아름다운 토박이말들이다.
사라진 우리말들을 온전히 옮겨담은 책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하늘연못)을 펴낸 장승욱(49·사진) 작가를 29일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낱말들이 풍부해질수록 생각이 풍부해진다고 봐요. 우리말로 생각할 수 있는 게 훨씬 좋잖아요.”
그는 이야기 내내 ‘단어’란 말 대신 ‘낱말’이라는 말을 썼다. 그는 “글을 쓸 땐 되도록 토박이말을 쓰려고 하지만 말을 할 때는 모든 말을 우리말로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가 고유어로 된 낱말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오래 전 일이다. 연세대 재학 시절 ‘우리말로만 된 시나 소설을 써야지’라는 생각에 틈만 나면 사전을 뒤적였다. 졸업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는 지도 교수였던 마광수 교수에게 논문 대신 직접 만든 우리말 사전을 냈다고. 대학 졸업 후엔 언론사 기자로 12년간 일하기도 했지만 그만두고, 우리말에 대한 책을 내는 작업에 집중해왔다.
“처음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잖아요. 밑천이 사전 속에 있더라고요. 달을 가리키다가 손가락만 보게 된 것 같기도 한데, 우리말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참 재미있거든요.”
책을 읽다보면 몰랐던 우리 어휘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혼 남자와 같이 사는 과부나 이혼녀는 ‘가지기’, 결혼했는데도 처녀 행세를 하고 다니는 여성은 ‘되모시’, 숫처녀인 과부는 ‘까막과부’, 초례만 올린 과부는 ‘마당과부’라고 하고 때가 지나도 시집을 못 간 노처녀는 ‘떠꺼머리 처녀’라고 한다.
책 제목에 쓰인 ‘도사리’는 익는 도중 바람이나 병 때문에 떨어진 열매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고, ‘말모이’는 사전을 뜻한다. 1부 격인 ‘도사리’에는 2만5000여개 정도의 우리말 어휘를 모아 어휘의 어원과 본뜻·속뜻을 풀어내고 2부 격인 ‘말모이’는 사전 형식으로 정리했다. ‘도사리’에 실린 글들에는 낱말에 얽힌 저자 개인의 체험이나 추측 등이 담겨져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읽다 보면 ‘내가 이렇게도 한국어를 몰랐던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장승욱은 차기작품 구상도 이미 끝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몸에 관한 낱말들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몸에 대한 것만 모아봐도 책 한 권 분량은 훌쩍 되더라고요. 아마 내년쯤에 새 책이 나오지 않을까요.”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