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정치가 본받아야 할 조선 민본주의 통치철학

입력 2010-09-30 15:06


조선의 통치철학/백승종 외 4명/푸른역사

요즘 ‘공정사회’가 화두다. 대통령이 집권 하반기 국정 핵심지표로 언급한 이후 온 사회가 공정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국정을 이끌 장관 후보자들이 연일 치부를 드러내고 정쟁과 국민 불신을 초래하는 점만 봐도 그렇다. 통치철학의 빈곤이 문제다.

제대로 된 통치철학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조선시대만 봐도 올바른 통치철학을 실천한 왕과 신하들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조선의 통치철학은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새 정치철학의 정립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간혹 조선 통치철학의 근간인 성리학적 가치가 상명하복이라는 비민주적 정치질서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현대 한국사회를 이룩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는 주장은 눈여겨볼 만하다.

“(성리학적 가치로) 가령 사회적 비용이 절감됐다. 500년간 이어진 조선왕조는 관리채용을 늘 최소 규모로 유지했지만 치안이 안정적이었다. 계층 간의 갈등이나 왕조에 대한 무력폭동 내지 반란 등도 드문 편이었다. 국가가 위기에 봉착할 때면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국운을 도왔다. 국가가 많은 비용을 들여 교육하지 않았는데 지역과 계층을 망라해 가치관이 하나로 통일되고 일상의 행동양식마저 표준화됐다.”(8∼9쪽)

책은 조선사회가 겪은 주요 변화에 맞춰 다섯 시기로 구분하고 세종대왕과 정도전을 시작으로 조광조와 김인후, 류성룡, 최명길, 영조, 정조를 거쳐 고종황제에 이르는 지도자들의 통치철학을 살폈다.

영조는 조선시대 다른 어느 왕보다 서민군주다운 풍모를 보였고, 검약의 통치철학으로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일궜다.

“내가 일생토록 얇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자전(임금의 어머니)께서는 늘 염려를 하셨고, 영빈(사도세자의 어머니)도 매양 경계하였지만, 나는 지금도 병이 없으니 옷과 먹는 것이 후하지 않았던 보람이다. 듣자니, 사대부 집에서는 초피의 이불과 이름도 모를 반찬이 많다고 한다. 사치가 어찌 이토록 심하게 되었는가?”(247쪽)

영조의 어머니는 후궁 출신이었다. 영조는 정통 왕세자 교육을 받지 못한 대신 서민적인 삶을 경험했고 이는 이후 서민적인 통치철학을 펼치는 원동력이 됐다. 영조는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의 아픔을 다스리기 위해 금주령을 실행하기도 했는데, 이를 어기면 깜짝 놀랄 만큼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1756년(영조 32) 영조는 술을 빚은 자는 섬으로 유배시키고, 사서 마신 경우 선비는 귀양을 보내고, 중인은 천민과 다름없는 수군에 배속시켰으며, 일반 백성은 고을의 노비로 삼았다. 평안도 남병사 윤구연이 몰래 술을 빚어 마신 사실이 적발되자, 숭례문에 행차하여 목을 베어 장대에 걸어 효시하기도 했다.”(249쪽)

정조는 신경질적인 성품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지역적 통합을 위해 혁신적인 인재등용을 위해 힘썼다. 2009년 2월 발견된 ‘정조어찰집’은 통치자로서의 정조가 얼마나 큰 그릇이었는지 엿볼 수 있다. 정조어찰집은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일종의 밀서를 묶은 책이다. 흔히 정조의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심환지가 정조와 밀서를 주고 받았다니. 심환지는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이 관여한 노론 벽파를 이끌었던 인물 아니던가. 더구나 정조가 세손 시절 노론 벽파의 압박에 불안감을 느낀 나머지 갑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정조의 포용력은 일반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들다.

“편지의 내용을 통해 정조가 정치적 반대세력과도 소통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정조어찰집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 서용보를 만났다. 내가 이미 이제학(심환지)에게 말하였으니 다른 사람을 시키거나 스스로 하거나 좋을 대로 하라고 서(서용보)에게 말하였다. 만약 내일 만나거든 경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어떠한가?’”(296∼297쪽)

저자들은 ‘민본주의’야말로 조선의 통치철학을 관통한 공통된 주제라고 결론 내린다. 조선은 비록 위계질서를 강조한 폐쇄사회였지만 백성을 중심으로 삼는 통치자들의 기본 철학은 현대에서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선의 통치철학을 그대로 추종해선 위험하다.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학국학과장 대리를 역임한 백승종 교수는 서문에서 “조선의 통치철학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성리학 위주의 조선사회를 향수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지나간 것이라는 이유로 성리학적 이상을 폐기처분하는 모습도 정당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다만 조선의 통치철학을 현대에 맞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제안이 없어 허전하다. 이미 우리는 개인의 개별적 인권을 중시하는 시민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