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박창욱씨의 자전거 GPS드로잉… 2155㎞ 꿈을 그리다

입력 2010-09-30 18:14


8월 28일 전북 부안군청 앞에서 출발했으니까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박창욱(26·계명대 광고홍보학과 4학년)씨는 한 달이 넘도록 자전거를 타고 있다. 아니,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친척에게 빌렸다는 MTB 자전거 핸들에 스마트폰 갤럭시S가 부착돼 있다.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애플리케이션 ‘런키퍼(Run Keeper)’가 이동 경로를 온라인 지도에 붉은 선으로 표시해 준다. 10월 3일 자전거 여행이 끝나면 이 선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에 걸친 초대형 그림(사진럟)이 된다.

혹시 기억하시는지? 주말섹션 And는 지난 2월 아이폰과 자동차로 서울에 호랑이를 그렸다(2월 12일자 11면 ‘스마트폰, 9×12㎞ 호랑이를 그리다’·사진럠). 스마트폰 위성 위치정보를 이용한 ‘GPS 드로잉’. 캔버스가 서울에서 전국으로, 붓이 아이폰·자동차에서 갤럭시S·자전거로 바뀌었을 뿐, 박씨의 화법(畵法)은 And의 호랑이 그림과 같다. 지난 27일 박씨를 만나러 간 곳은 경북 구미다.

2155㎞ GPS 드로잉

오후 6시쯤 구미에 도착한 그는 경남 의령에서 오는 길이었다. 오전 7시 출발해 130㎞ 가까이 페달을 밟았다고 한다. 키 173㎝, 체중 70㎏(한 달 새 3㎏쯤 빠졌다). 늦여름 볕에 그을린 피부는 검다 못해 붉다.

집은 대구다. 8월 28일 고속버스 첫차에 자전거를 싣고 부안에 가서 오후 2시 출발했다. 전북 정읍∼전남 담양·화순·보성·구례∼경남 하동·함양∼전북 무주∼대전까지 열흘쯤 걸렸다. 이어 충남 논산∼전북 익산·진안∼경남 거창·합천∼경북 김천·상주∼충북 청주∼충남 아산을 달렸다.

다시 경기 안성∼충북 제천∼경북 봉화·영천∼경남 밀양∼대구∼경남 창녕·고성·의령을 지나 구미에 왔고, 이제 경북 영주∼강원 태백∼경북 울진∼강원 삼척을 거쳐 평창까지 가면 GPS 그림이 완성된다. 이 그림을 위해 그의 자전거는 모두 2155㎞를 달린다.

-무슨 그림이 되는 거죠?

“TBWA코리아 로고(사진럞)예요. 로고 우측 상단의 화살표 그리는 게 남았어요.”

TBWA코리아는 SK텔레콤의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대로 T’ CF를 만든 외국계 광고회사. 박씨는 2006년 ‘사람을 향합니다-영웅편’을 본 뒤로 이 회사에 ‘꽂혔다’고 했다. 지하철 전동차와 플랫폼 사이에 다리가 낀 사람을 구하려고 승객들이 모두 내려 전동차를 옆으로 미는 장면, 그 위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영웅입니다’란 카피가 흐를 때 눈물이 찔끔 나더란다.

-로고 그려서 뭐하려고요?

“그림이 완성되면 그 회사 찾아가서 보여줄 거예요. 당신네 광고엔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 내 목표도 그런 광고를 만드는 거다, 이 그림에 내 이야기를 담았는데 한번 보시라, 하려고요.”

박씨 전공은 원래 물리학이었다. 2006년 ‘영웅편’ 광고를 본 뒤 이듬해 광고홍보학과로 전과(轉科)했다. ‘광고쟁이’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고, 자연히 TBWA코리아에서 일하는 게 목표가 됐다. 광고제마다 쫓아다니고, 공모전마다 응모하며 나름대로 전략이 생겼다고 한다. 광고는 이야기다, 최고의 스토리텔러가 돼야 한다, 나만의 이야기부터 만들자… 뭐, 이런 거다.

-왜 GPS 드로잉을 택한 거죠?

“올 초 TBWA코리아의 대학생 예비광고인 육성 프로그램에 지원했어요. 패기와 열정을 보여주려고 알몸마라톤대회 나가서 완주하고 지원서에 출전기까지 썼는데, 떨어졌어요. 별로 참신하지 않았나 봐요. 그 뒤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나만의 이야기가 될 만한 게 뭘까 궁리하다 자전거 전국일주와 GPS 드로잉을 생각한 거예요.”

-알몸마라톤에 자전거까지, 대단한 체력이네요.

“원래는 약골이에요. 5년 전 뇌수술도 받았고….”

뇌종양, 수술, 의병제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친구랑 얘기하다 갑자기 머리가 ‘띵’ 하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통증이 밀려오곤 했다. 6학년 때 주기적 발작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갔고 뇌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너무 어려서 수술 대신 한약으로 통증을 다스렸다. 2002년 계명대 물리학과 입학할 무렵엔 두통이 오려 하면 미리 느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럴 때면 친구들과 어울리다가도 잠시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20∼30초 통증을 견디곤 했다.

“그땐 교사나 남자간호사가 되려 했어요. 안정된 직업이니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에 젊은 놈이 도전이나 모험은 생각도 못했죠. 꿈이 없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2004년 1월 입대했어요. 진단서 제출하면 면제됐을 텐데 징병검사 때 병을 숨겼어요.”

강원도 고성군 비무장지대 수색대에 배치됐다. 그해 12월 작업 도중 쓰러졌고, 15시간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의병제대했다. 자전거 헬멧을 벗으니 땀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기다란 수술자국이 남아 있다. 1년간 몸을 추스르고 2006년 복학해 광고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이다.

“광고홍보학과로 옮기고 제일기획 국장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이 이러시는 거예요. 요즘 대학생들은 자기한테 도움이 될지 이것저것 재보고서야 뭔가 하는데, 그냥 다 해봐라. 모든 걸 경험하다 보면 길이 보일 거다.”

세상 공부 한다며 휴학하고 1년간 대구 두류공원 장터에서 “골라∼ 골라∼.” 옷장사를 했다. 보디빌딩으로 근육을 키웠고, 마라톤을 시작해 풀코스를 두 차례 완주했다. 라이프가드(수상인명구조원) 자격증도 땄다. 동해부터 서해까지 섬들을 일주하는 ‘해양영토대장정’에 참가하고, 봉사 동아리를 창단하고, 광고기획서 잘 쓰려면 필요할 것 같아 국어능력인정시험도 쳤다.

2155㎞ 자전거 GPS 드로잉도 이것저것 재지 않고 뛰어든 일 중 하나다. 출발 2주 전에야 자전거를 구해 연습을 시작했다. 중학교 이후 처음 탄 거란다. 한 달 여행 예산은 100만원.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 내고, 학자금 대출자에게 주는 생활비 대출로 마련했다. 보호 장구와 텐트, 스마트폰을 샀고, 펑크 때우기 등 자전거 정비는 인터넷에서 배웠다.

그리고 명함을 1000장 만들었다. ‘온몸으로 광고하는 예비광고인 박창욱’이라고 새겼다.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자신을 ‘광고’하고, 그들에게 100원씩 기부받아 난치병 환자 치료비로 기부한다는 계획이다. 텐트 옆에 걸어 여행 취지를 알릴 현수막도 제작했다. ‘대한민국은 종이가 되고 자전거는 연필이 되어 나의 꿈을 그린다’는 문구로.



GPS 그림에 담긴 이야기

부안에서 출발할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약 30㎞ 달려 도착한 정읍 제일고 운동장 소나무 밑에 텐트를 쳤다. 밤 11시쯤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텐트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급히 텐트를 걷고 정읍 시내를 헤매다 간신히 찜질방을 찾아 첫 밤을 보냈다. 여행 초기 숙박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 텐트를 치거나 찜질방에 가거나.

사흘째 화순의 한 찜질방에서다. 비에 젖은 옷을 빨려다 주인에게 잔뜩 면박당하고 누웠는데 TV에서 두 가지 뉴스가 들려왔다. 태풍 곤파스가 북상 중이고, 성폭행 예방을 위해 이제 학교 운동장을 개방하지 않는단다. 태풍이 오면 자전거는 어떻게 타며, 또 잠은 어디서 자나….

곤파스를 만난 것은 보성에서 구례로 갈 때다. 순천시 주암호 부근 마을에서 잠시 쉬고 구례까지 일정을 강행하려던 그를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사코 붙잡아 앉혔다. 아직 비도, 바람도 없는데 아주머니들은 “쫌 있으면 비 올 겨. 젊으니께 욕심이 나겄지만 참아야 할 때도 있는 겨”라고 했다. 결국 포기하고 방을 구해 들어서자 거센 바람에 창문이 깨질 듯 흔들렸다.

경남 함양에선 학교 대신 늘푸른교회 마당에 텐트를 쳤다. 마침 교회 초·중생 공부방이 수업 중이었다. 그의 여행 얘기를 들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좋은 말 좀 해주라”며 ‘즉석 강의’를 부탁했다.

“학생이 20명쯤 있었어요. 그냥 제 얘기를 했죠. 머리가 아팠던 얘기, 군대 간 얘기, 수술 받은 얘기, 자전거 타는 게 내 꿈을 그리는 거란 얘기…. 도진이, 다은이, 진희. 그때 만난 아이들이 여행 내내 휴대폰 문자를 보내줬어요. ‘지금 어디세요’ ‘힘내세요’ ‘항상 YES를 외치세요’ 하면서.”

하루 일과는 이렇다. 오전 6시 기상. 씻고 요기하고 짐 챙겨서 오전 7시 출발. 5시간쯤 자전거를 탄 뒤 식당을 찾아 점심 먹으며 스마트폰을 충전한다. 길에서 쉬거나 마을에 들를 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100원’을 부탁한다. 지금까지 사용한 명함은 600여장. 1000원짜리, 5000원짜리를 선뜻 내주는 이도 있어서 기부금은 15만원 이상 모였다.

점심 먹고 오후에 또 5시간쯤 자전거를 탄다. 초기엔 하루 40∼50㎞도 버거웠지만 지금은 120∼130㎞는 거뜬하다. 외로움은 항상 해가 지길 기다려 찾아온다. 틈틈이 읽으려 가져간 책은 ‘젊은 날의 교양’. 한 구절을 소개해줬다. ‘당신이 꿈꿀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시작하라. 용기를 내면 그 속에 내재된 저력이 당신을 도울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이야기를 찾았나요?

“거창 산길에서 넘어졌어요. 앞바퀴 휠이 찌그러졌죠. 함양 가서 고치려고 버스 기다리는데 마을 사람들이 저를 빙 둘러싸고 무슨 일이냐 묻더군요. 한 분이 데려다 준다고 차를 가져오셨는데, 마티즈예요. 자전거를 실을 수 없어 버스 타겠다고 했더니 다시 이장님 카렌스를 빌려와 태워주셨어요. 한 달 내내 그런 식이었죠. 이 그림을 저 혼자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그린 게 아니더라고요.”

-어쨌든 그림이 취업에 도움이 되겠네요.

“에이, 이거 하나 그렸다고 같이 일하자 하겠어요? 전엔 취업이 첫째 목표였는데 이젠 한 세 번째 정도로 밀렸어요. 한 달 자전거 탔더니 제 꿈이 취업보다 더 커진 것 같아요.”

구미=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