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윤호] 약골 중·고생과 ‘스펙’ 쌓기
입력 2010-09-30 17:38
고등학교 2학년 아들 녀석이 어깨에 파스를 붙여 달라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추측컨대 하루 종일 좁은 책상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세가 나빠져 그런 것 같다. 아침 7시에 등교한 아이는 밤 12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온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독서실에 남아 자율학습을 하기 때문이다. 수업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하루 종일 학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요즘 고등학생들의 보편적인 일상이다.
몸에서 넘쳐나는 에너지를 한껏 분출해야 할 청소년들이 마치 구속복(拘束服)을 입은 죄수들처럼 입시에 얽매여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성장기 청소년들은 땀이 날 정도로 몸을 움직여야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고 신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중·고생들에게 이런 기회는 1주일에 2시간인 학교 체육시간이 전부다. 그마저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다. 많은 학생들이 체육시간은 모자란 잠을 보충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으로 여긴다. 교사들도 공부에 찌든 학생들이 안쓰러워 눈을 감는다. 학교체육의 현실이 이렇다.
‘미래형 교육과정’ 우려돼
서울시교육청이 중·고생 66만여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학생신체능력검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최하 등급인 5급 28.4%, 4급 24.8%로 정상 체력보다 떨어지는 ‘약골’이 53.2%로 절반이 넘었다. ‘약골’ 비율은 입시 부담이 가장 큰 고3 수험생(55.4%)과 중학생(52.3%)이 별 차이가 없다. 고교생뿐 아니라 중학생들도 운동 부족으로 인한 체력 저하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작년 말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이라며 고시한 ‘2009 개정 교육과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특정 과목을 한 학기나 학년에 몰아서 배우는 ‘집중이수제’를 도입하고, 교과별로 수업시수를 20% 범위 내에서 증감 운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을 다양화할 것이라는 기대효과보다 특정 과목 쏠림 현상이라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이다.
교과부가 최근 발표한 전국 3144개 중학교의 ‘2011학년도 교과별 수업시수 조정 계획’에 따르면 영어는 69.9%의 학교가, 수학은 56.8%의 학교가 수업 시간을 늘릴 예정이다. 반대로 정보, 한문 등 선택과목은 58.7%의 학교가 수업 시간을 줄일 계획을 세웠다. 기술·가정(38.7%) 도덕(29.8%)은 말할 것도 없고 국어(15.5%) 시간도 줄이려는 학교가 적지 않으니 음악(14.4%) 미술(15.4%) 체육(14.7%) 등 예체능 과목이 ‘찬밥’ 신세를 면할 턱이 없다.
또 서울시교육청 조사 결과 대부분의 중학교가 국·영·수는 6학기 내내 나눠서 편성했으나 기술·가정은 4학기에, 도덕 역사 음악 미술 체육 등은 4∼6학기에 몰아넣었다. 중·고생들의 성장과 신체활동이 특정 학기나 학년에만 몰려 있는 게 아닌데 단기간에 몰아치기 수업을 한다고 해서 성과가 더 커질 수는 없다.
학교체육 인식 새롭게 해야
교과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어제 공동으로 학생들의 체력저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초·중등 학교체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체육교육 선도학교 500곳을 지정하고, 학교스포츠클럽 학생 등록률을 50%로 높이는 등 학교체육이 ‘즐기는 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교육과정의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이 입학사정관제에 반영되도록 권장하겠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학교체육이 또 하나의 ‘스펙’ 쌓기가 되면 새로운 사교육 부담만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체육을 입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의 가치를 높이고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데 스포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학생들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김윤호 논설위원 kimy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