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나비, 스마트폰 상대 선전포고 왜?… SKT- KT 내비 무상제공, 소비자 빼앗기자 위기감

입력 2010-09-30 18:09


아이나비로 유명한 내비게이션 업체 팅크웨어는 지난 8월 SK텔레콤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SK텔레콤 내비게이션 ‘T맵’이 팅크웨어의 특허권을 침해해 법적대응에 나서겠다는 내용이었다.

팅크웨어가 침해당했다는 특허는 ‘주변 교통정보 제공’(2004년 출원)과 ‘차선정보 제공’(2008년) 두 가지다. 둘 다 그리 복잡한 기술은 아니다. ‘주변 교통정보 제공’은 차량이 달리고 있는 도로의 교통정보를 수집해 실시간 표시하는 기술이다. ‘차선정보 제공’이란 경로를 확인해 이동할 차선을 미리 알려주는 걸 말한다. 당신의 내비게이션이 ‘10m 전방에서 오른쪽 도로를 타세요’라고 안내해준다면 이 기술을 쓰고 있는 거다. 이미 대다수 내비게이션에서 사용되고 있는 범용기술이다.

1위 업체의 ‘이상한’ 공격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만약 SK텔레콤이 팅크웨어의 특허권을 침해한 거라면, 내비게이션 업계 전체가 범법자 집단이 된다. 다수가 쓰고 있고 몇 년간 허락 없이 썼다면, 결국 모두 팅크웨어의 특허권을 침해한 거다. 게다가 그간 팅크웨어는 타사의 특허권 침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로열티 지급 요구도, 경고장 발송도 한 적이 없다. 침묵하던 팅크웨어는 지난 8월, SK텔레콤만 지목해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이유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비게이션 선두 업체로서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기존 중소기업 시장을 교란시키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SK텔레콤 T맵의 내비 시장 점유율은 7∼8%. 계열사 SK M&C가 개발한 차량용 내비게이션 단말기 엔나비와 함께 패키지로 판매하는 유료 T맵의 점유율이 그 정도다. 팅크웨어 점유율은 50%가 넘는다. 점유율 50% 업체가 10%에도 못 미치는 회사를 향해 대기업이라고 견제하는 꼴이다.

이 이상한 공격에는 모바일 혁명의 시대, 산업계 전반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집약돼 있다. 지난 10년간 내비게이션 시장은 차량에 탈부착하는 거치형 내비게이션 단말기를 중심으로 착실히 성장해 왔다. 지금, 이 시장이 스마트폰이라는 낯선 도전자를 만난 것이다.

새 도전자는 체급부터 달랐다. 12조원(2009년 SK텔레콤 매출) 대 2294억원(팅크웨어). 통신과 내비 시장에서 뛰는 플레이어들의 압도적 덩치 차이는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들고 나온 게임의 룰도 정반대였다. 내비 업계에서 유료 서비스가 규칙이라면, 스마트폰 앱 시장에서 공짜는 반칙이 아니다.

만약 이 두 시장이 충돌해 내비게이션 단말기 업체들이 도태된다면 이건 대기업의 중소기업 죽이기인가, 아니면 IT 혁명의 필연적 결과인가. 통신사의 무료 전략은 중소기업의 유료 시장을 짓밟는 불공정한 행위인가.

시장은 요동치는데 아직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의 공습

지난 6월 말 갤럭시S가 출시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SK텔레콤은 갤럭시S를 내놓으면서 내비게이션 T맵을 기본 앱으로 끼워 팔았다. 정액요금제 고객에게 무료로 깔아주는 기본 앱에 T맵을 포함시킨 것이다. 갤럭시S 이용자는 별도 단말기 없이 길찾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뒤질세라 통신업계 라이벌 KT가 나섰다. 추석 전인 9월 11일 아이폰용 내비게이션 앱 ‘쇼내비’를 공개했다. 역시 무료였다. 쇼내비의 인기는 폭발했다. 3주도 안돼 20만 명이 다운로드했다.

200만대의 T맵 탑재 스마트폰과 20만건의 쇼내비 다운로드. 결국 시장에는 지난 3개월간 220만대의 공짜 내비게이션이 배포된 셈이다. 지금까지 차량용 내비게이션 누적 판매대수는 600만대. 국내 자동차 보급대수 1800만대를 기준으로 ‘차량 1대당 내비게이션 1대’를 최대치라고 한다면, 미래 내비게이션 소비자는 1200만 명이다. 그 가운데 18%를 3개월 만에 눈뜨고 뺏긴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내비 업계가 긴장할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시작에 불과하다. 내비게이션 단말기의 최대 장점은 큰 화면이다. 아이폰4G와 갤럭시S의 액정 크기는 대각선 길이를 기준으로 3.5인치와 4인치. 기존 휴대폰보다는 크지만 7인치인 내비게이션 단말기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핸들을 잡은 채 이용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그러나 태블릿PC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갤럭시탭은 7인치로 내비게이션 단말기와 같은 크기다. 지난 7월 SK텔레콤은 갤럭시탭에도 T맵을 기본 앱으로 넣겠다고 발표했다. 조만간 아이패드(9.7인치)가 한국에 출시되면 쇼내비 이용자도 더 늘어날 것이다. 이 추세라면 무료 앱이 내비 단말기 시장을 통째로 집어삼킬 거란 우려는 곧 현실이 된다. 팅크웨어의 발표는 이런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다.

쇼내비 대신 T맵이 타깃이 된 이유는 패키지 전략 때문이다. 똑같이 공짜여도 KT와 SK텔레콤 방식의 차이는 컸다. KT의 쇼내비가 다운로드를 해야 하는 무료 앱이라면, SK텔레콤의 T맵은 아예 스마트폰에 깔린 채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팅크웨어 관계자의 설명이다.

“내비게이션이 아니라도 스마트폰의 무료 앱은 많다. 무료라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아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에 들어왔다고 무조건 시비 거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SK텔레콤의 패키지 전략이다. 이건 공짜 전략, 끼워팔기 전략이다. 대기업이 자금력과 마케팅 노하우만으로 중소기업이 힘겹게 일궈온 시장을 짓밟는 거다.”

다윗과 골리앗의 일전?

‘골리앗 SK텔레콤이 자금, 마케팅 능력 같은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다윗 팅크웨어와 불공정한 경쟁을 벌이려 한다.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건 특허권밖에 없었다.’ 팅크웨어 측이 밝힌 특허권 침해 주장의 배경이다.

그동안 내비게이션 시장을 이끌어온 건 팅크웨어, 파인디지털 같은 중소업체들이다. 1990년대 후반 불모지였던 내비 시장에 뛰어들어 기술과 서비스 경쟁을 통해 파이를 키웠다. 한해 800억원에 불과하던 내비 시장은 현재 4000억∼5000억원 규모까지 커졌다.

이곳에 통신시장의 공룡기업 SK텔레콤과 KT가 끼어든 것이다. 영업 방식도 자금력을 무기로 한 공짜 전략이다. 한쪽은 20만∼30만원대의 유료시장. 반대편은 기왕에 쓸 스마트폰에 내비 앱을 끼워주는 물량공세다. 팅크웨어 관계자는 “이건 절대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팅크웨어가 다윗의 입장인지에는 이견이 있다. 내비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위치는 역전돼 있다. SK그룹 자회사인 SK M&C,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웅진홀딩스 등 대기업들의 내비 시장 점유율은 10%에 못 미친다. 반면 팅크웨어는 압도적 1위 업체다.

이 때문에 팅크웨어의 공격을 ‘업계 1위 기업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더 큰 기업의 진입을 막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팅크웨어가 내비 시장의 대기업인데 대기업의 횡포를 운운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결국 제 밥그릇 지키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된 건 기존 내비업체만은 아니다. 지난 3월 아이폰용 내비게이션 앱 맵플3Di를 내놓은 맵플모바일. 49.99달러의 맵플3Di는 올 봄 최고의 히트 앱이었다. 출시 직후 앱스토어 매출 1위로 올라선 뒤 24주 이상 수위를 지키며 승승장구했다. 상황은 KT 쇼내비 출시를 기점으로 반전됐다. 고객이 쇼내비에 몰리면서 한때 하루 300건까지 치솟던 맵플의 다운로드 건수는 하루 10건 이하로 급락했다. 박동훈 맵플모바일 대표는 “회사가 존폐 위기에 몰렸다”고 말했다.

“통신사들의 공짜 전략은 중소기업 죽이기밖에 안 된다. 소비자들에게도 이건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당분간은 공짜니까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업체 하나만 남으면 소비자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새로운 편익이나 서비스를 창출하기 어렵다. 독과점의 폐해가 그런 것 아니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도 생각하고 있다.”

내비게이션, 생존과 도태 사이

업계 한 관계자는 내비게이션의 미래를 이렇게 비관했다. “쇼내비를 20만명이 다운로드받았다면 20만명에게는 내비 단말기가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건 너무 쉬운 수학이다. 스마트폰이 커지면 단말기는 죽는 ‘빼기’ 시장이다. 스마트폰이 아니라도 공격은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포식자는 널려 있다.” 내비 단말기 시장이 사라질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낙관론도 작지 않다. 장재호 파인디지털 마케팅앤세일즈부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낙관론에는 근거가 있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는 액정 크기, 수신 속도, 탈부착의 번거로움 때문에 차량에 고정된 내비게이션 전용 단말기의 편리함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스마트폰은 액정이 작다.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질이 떨어져 초기 수신도 느리고 부정확하다. 아이패드, 갤럭시탭은 액정이 커서 좀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꽤 불편할 거다. 운전할 때마다 탈부착을 해야 하는데 이게 간단치 않다. 결국 차량에 한 대를 별도로 비치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태블릿PC가 너무 비싸지 않느냐. 현재 단말기 가격은 많이 떨어졌다. 비용 대비 만족도를 따져보면 별도 내비를 구입할 거라고 본다.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내비는 두 개의 다른 시장이라고 판단된다.”

현재까지 현실은 그의 전망대로 흘러가고 있다. 220만대에 해당하는 무료 앱이 보급됐지만 올 7∼9월 내비게이션 업체의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높아졌다. 상반기 실적은 기록적이었다. 팅크웨어는 올 2분기 6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2분기 기준 최대였다. 파인디지털도 올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51% 늘어난 25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18% 증가한 32억원이다. 스마트폰 무료 앱의 영향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비 시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낙관과 비관 중 어느 쪽의 예측이 맞을지 속단하긴 어렵다. 변화의 속도로 짐작컨대 승패는 조만간 나올 것이다. 그게 소비자를 위해 긍정적인 변화였는지도 곧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