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아름다운 책보다 더 아름다운

입력 2010-09-30 17:38


마음의 물결이 일렁일 때 내가 즐겨 읽는 책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제대 명예교수이자 서양사학자인 이광주 선생이 지은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이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이 책을 다시 꺼내 보았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본문화가 활발했는데 그때 꽃처럼 아름답게 핀 책부터 20세기 서적 제작의 명장으로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에 이르기까지 책의 역사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즐겨 읽는 이유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네 가지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 때 최고의 호화 미장본으로 랭부르 삼형제가 세밀화를 그린 베리 공작의 ‘호화 시도서’, 1500년까지의 초기 인쇄본을 지칭하는 요람 인쇄본의 최고 명품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윌리엄 모리스에 의해 제작된 ‘제프리 초서의 저작집’, 20세기 최고의 아름다운 책 ‘샤갈의 그림 성서’가 그것이다.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책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책은 읽는 것이기에 앞서 보는 것이요, 여기저기 어루만지는 것이다”라고 이광주 선생이 써놓은 글귀처럼 화려한 장식으로 장정한 책들은 아름다움이라는 영원성을 간직한 채로 내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화석처럼 굳어버린 채 책이라는 감옥에 갇힌 아름다운 책들은 과연 언제까지 그 아름다움으로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

최근 출간된 신간들을 살펴보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 ‘달달한 인생’이다. 저자는 카투니스트 지현곤씨인데, 두 평 반 골방에서 장애를 딛고 살면서 세계적인 카툰 작가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손끝에서 팔꿈치를 지나 어깨를 타고, 두 어깨를 이어 반대 팔꿈치를 타서 그쪽 손끝으로. 한 손끝에서 다른 손끝까지 일직선으로. 그 길이에서 한 손바닥 너비를 더한 만큼의 가로 폭과, 그 길이의 하나 반만큼 뻗어 있는 세로 폭의 작은 방”이 지현곤씨가 지금까지 살아온 공간이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설명이라 한참 동안 문장을 천천히 읽고 이해하느라 곤혹스러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척추결핵으로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치료도 잘 받지 못하고 만화책을 베껴가며 40여년 동안 그림을 그려왔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장애인이지만 창작을 통해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저자는 ‘사랑과 소외’ ‘분배의 불균형’ 등 일반인으로부터 소외된 관점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그린다. 그리고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에 특별한 클라이맥스는 없어도 나는 내 삶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달달하게 할 1퍼센트를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만의 기적을 만드세요.”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과 서로 부대끼면서 그로 인해 숨 쉬고 있음을 자각하며 사는 게 아닐는지.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통해 잠시 통증을 잊으려고 하지만 결국 순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 책을 봄으로써 우리 삶을 위로하지만 당신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생애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은 없지 않을까.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