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광물 탐사 고상모 실장 “희토류, 홍천·충주서 캐볼만 하다”
입력 2010-09-30 18:11
2001년이 마지막이다. 강원도 홍천군 자은리 일대에서 1994년 첫 시추 이후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탐사는 7년 만에 막을 내렸다. 지하 60m부터 270m까지, 다양한 깊이와 방향에서 얻어낸 암석에는 분명 ‘희토류’가 있었다. 품위(광석 중에 함유된 특정 원소의 비율)는 평균 2.4%. 당장 개발할 수준은 아니라도 가능성은 충분했는데,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희토류를 비롯한 희소금속 탐사는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홍천 외에도 충북 충주, 경북 울진 등지에서 드문드문 이뤄졌다. 하지만 길어야 1∼2년 해보다 마는 식이었다. “경제성 없는 프로젝트 왜 하냐는 타박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가 힘들었어요. 멀리 내다보고 해야 하는 건데….”
대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29일 만난 고상모 해외광물자원연구실장은 그간의 희토류 개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희소광물 탐사 작업 총책임자인 그는 최근 불거진 중·일 희토류 분쟁 탓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남한 땅에 희토류 4600만t 묻혀 있다
희토류는 란타늄, 세륨, 프라세오디뮴 등 희귀한 금속 원소 17개를 통칭하는 용어. 2차전지, 광학렌즈, 형광제, 영구자석 등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소재여서 ‘첨단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린다. 지난해 전 세계 생산량 12만4000t 중 중국이 12만t(97%)을 생산했다. 일본과 외교 분쟁이 벌어지자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고, 이 자원무기에 콧대 센 일본이 무릎을 꿇었다.
중국이 한국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다면? 우린 별로 타격을 입지 않는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우린 희토류를 산업용 소재로 가공하는 기술이 부족해서 수입량이 많지 않다. 주로 일본이 가공한 희토류 소재(반가공형태 및 완제품)를 수입해서 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희토류(산화물)는 2005년 7398t에서 지난해 2655t으로 오히려 줄었다.
이처럼 취약한 소재산업을 키우고 수입 의존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지경부는 지난해 11월 ‘희소금속 소재산업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희토류, 크롬, 망간, 몰리브덴, 텅스텐, 리튬 등 여섯 가지를 ‘준전략광종’으로 지정하고, 올 6월부터 ‘국내 희소금속 탐사 및 활용기술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그 책임자가 고 실장이다. 그는 “국내에도 희토류가 꽤 묻혀 있다”고 했다.
-어디에 있습니까?
“희토류는 지구 중심부 마그마가 어떤 화학적 변화도 겪지 않고 지층으로 분출된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대표적인 곳이 홍천과 충주예요. 두 지역에 묻혀 있다고 추정되는 양이 홍천 2597만t, 충주 2099만t입니다. 합쳐서 4600만t쯤 되죠.”
-어떻게 찾아낸 거죠?
“항공조사로 파악된 매장 추정 지역을 일부 시추해 나온 겁니다. 땅속 광물의 양을 추정할 때 자원량과 매장량 개념을 사용하는데, 자원량은 지질조사를 토대로 한 추측이고, 매장량은 정확한 시추 자료에 근거한 수치예요. 정확도에 따라 예측·개측·정측 자원량, 예상·확정 매장량 등 다섯 단계로 세분하는데 4600만t이라는 건 개측 또는 정측 자원량 개념이에요.”
-4600만t이면 많은 건가요?
“실제 채굴할 수 있는 양은 선별·분리 과정에서 손실률이 얼마인지 따져봐야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원석 기준으로 4600만t 정도면 적은 게 아니에요. 최소한 중·소규모 광산은 되죠. 지금 진행 중인 작업은 이런 곳들을 정밀 조사해서 경제성을 따져보는 겁니다.”
희토류 탐사, 사상 첫 5개년 프로젝트
광물 탐사는 지난한 작업이다. 국제 시세가 올라 위기감이 조성되면 서둘러 달려들었다가도 진득하게 진행하지 못하고, 가격이 떨어지면 금세 시들해지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특히 1980∼90년대에는 광물 탐사를 하려 해도 예산 확보하기가 어려웠어요. 세계적으로 광업 침체기였죠. 광산업 선두권에 있는 미국, 호주, 캐나다 광산들도 환경문제 등으로 문을 닫았고요. 국내에선 연구자들이 알음알음 확보한 연구비로 근근이 탐사가 이어지는 수준이었죠.”
지금까지 희토류 탐사가 가다서다 반복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업은 좀 다르다. 사상 처음 5년짜리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올 예산은 24억원, 내년에는 60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고 실장은 “국내 희귀금속 조사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장기간 하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희토류 탐사는 여러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첫 단추는 항공방사능 조사. 희토류가 포함된 광석은 우라늄처럼 방사능을 내뿜는다. 헬리콥터로 전국을 비행하며 방사능 수치가 높은 지역을 측정하는 작업이다. 현재 전국 방사능 현황은 대부분 파악돼 있고, 이를 토대로 추려낸 지역이 홍천, 충주 등이다.
다음 단계는 지난 6월 시작된 지화학탐사. 준정밀탐사라고 부르는 이 조사는 주로 하천을 따라 이뤄진다. 지층에 있는 금속 성분이 물에 씻겨 하천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하천 모래층을 채취한 뒤 무거운 금속 성분만 가라앉혀요. 이걸 분석하면 주변 지대에 어떤 금속 원소들이 포함돼 있는지 나오죠.”
방사능 수치가 높은 지역에 하천이 없다면 직접 돌아다니며 땅 위로 드러난 암석층마다 방사능 측정기를 들이대야 한다. 암석 지화학탐사라 부른다. 식물 잎사귀를 분석하기도 한다. 식물에는 토양에 포함된 금속 원소가 남아 있다. “산업적으로 유용하게 쓰이는 광물을 광석이라 부르고요, 광석이 모여 있는 지대가 광체예요. 우리 목표는 광체를 찾는 거예요.”
6월 지화학탐사가 시작된 뒤로 고 실장은 일주일에 3∼4일씩 홍천, 충주 현장에 머물고 있다. 지금까지 찾아낸 광체에서 조만간 시추가 이뤄질 예정이다. 정밀측정 단계다. 희귀금속을 함유한 광석이 땅속에 어떤 모양으로 얼마나 매장돼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일 희토류 분쟁이 터져 나왔다. 정부는 부랴부랴 현재 진행 중인 6곳 외에 희귀금속 탐사 지역을 내년부터 5곳 더 늘리기로 했다.
2002년 전남 해남군 황산면에서 추정가치 493억원의 고품위 금광이 발견됐다. 해남은 고 실장이 90년대 초부터 끈질기게 금광 탐사 필요성을 주장해온 곳이었다. 그는 고집스레 탐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현재 국내 유일의 금광인 은산광산이 개발됐다. 희토류도 그렇게 확보되기를 고 실장은 바라고 있다.
하지만 희토류를 찾는 게 능사는 아니다. 원석을 가공해 소재로 만드는 기술이 있어야 산업적으로 의미를 갖는다.
“희토류는 원석을 캐면 다른 광물들이 함께 포함돼 있어요. 희토류 광물만 분리해낸 뒤 다시 희토류 금속원소별로 추출하는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소금(NaCl)에서 나트륨(Na)과 염소(Cl)를 분리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죠. 그래야 실제 산업에 활용할 수 있어요. 탐사와 함께 선별·제련 기술도 개발해야 합니다.”
대전=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