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진

입력 2010-09-30 18:08


40%를 넘는 시청률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막을 내렸다. ‘김탁구’를 읽는 코드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주인공의 스승이 평생 추구한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만화적 표현 같으면서도 은근히 진지한 성찰을 유도하는 구석이 있다. 맛있게 먹어서 배부르고 행복해지는 빵이야말로, 빵의 처음이자 끝인 셈이다. 빵이든 예술이든 모든 것의 본질은 의외로 쉽고 단순한 문장으로 끝이 난다.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배부르고 행복한 사진집이 최근 국내 출판계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말 포토넷이 복간한 고(故)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은 출판 첫 달 매진을 시작으로 벌써 4쇄 판매에 들어갔다. 유독 순수 사진집 구매에 인색한 우리나라에서 2쇄 이상 발행된 책은 그동안 강운구의 ‘경주 남산’과 김기찬의 ‘골목 안 풍경’ 등 몇 손가락에 꼽힌다.

‘윤미네 집’은 아마추어 사진가이자 세 남매의 아버지인 전 선생이 첫딸 윤미가 태어난 날부터 혼인하던 날까지를 기록해 엮은 사진집이다. 물론 사진 밖에서 전 선생은 아마추어가 아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진두지휘한 토목공학자이자 성균관대 부총장을 역임했다. 그 시절 여느 아버지처럼 바쁘고 부지런한 근대화의 주역이자 교육자였다. 그러나 소박한 그의 사진 속에선 자신의 말마따나 자식들과 ‘물고 빨고 뒹굴기’에 바쁜 평범하고 정 많은 아버지일 뿐이다.

멋 부리지 않은 사진 속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8평 마포아파트의 소박한 살림살이와 그 공간의 주인공인 세 남매의 따뜻한 성장기가 담겨 있다. 사진기와 필름을 갖춰 사진 찍는 일이 호사가의 취미로 통하던 시대였으나, 기록사진의 가치를 깨닫고 평생 사진기를 놓지 않은 그의 성실함은 고가 장비로 뭘 찍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요즘 아마추어들에게 적잖은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윤미네 집’은 시집간 윤미가 남편을 따라 멀리 미국으로 떠난 허전함을 달래려고 평생 찍었던 필름을 정리해 1990년 처음 발간됐다. 친구였던 사진가 주명덕 선생이 인화와 편집을 도왔고, 사진집의 마지막을 장식한 아버지와 신부(윤미)의 결혼식 입장 장면은 사진가 강운구 선생이 찍어줬다. 초판본은 오래전에 절판됐지만 그동안 사진집 애호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생명을 유지해 왔다.

전 선생은 2002년 췌장암 선고를 받은 뒤 만사 제쳐두고 아내 이문강 여사 사진을 정리해 ‘마이 와이프’란 가제를 붙여둔 채 2006년 세상을 떠났다. 친구의 여동생으로 만나 할머니가 된 아내에게 그가 주고 떠난 마지막 선물이다. 초판본 때부터 가족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는 게 싫었다는 아내는 오랜 망설임 끝에 결국 ‘마이 와이프’를 부록으로 붙인 ‘윤미네 집’ 복간본을 펴내서 그런 남편에게 보답했다.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사진이 보편적 맥락을 떠나 개인에게 상처처럼 와서 박히는 현상을 ‘푼크툼’이라 표현했다. ‘눈물 도둑’이란 별명까지 얻은 ‘윤미네 집’은 지금 저마다에게 각기 다른 푼크툼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진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동반한다. 그때의 장소와 사건과 사람이 지금은 없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진은 상실했기에 더욱 소중한 어떤 순간에 대한 기억이다. 시간이 지나야만 깊은 맛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빵과 다르다.

송수정<포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