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우야, 불량 아빠지만 엄마 빈자리 채워줄게

입력 2010-09-30 18:05


불량아빠만세/글 김경욱·그림 소복이/시공주니어

10살 찬우는 아빠랑 단둘이 산다. 근데 아빠가 불량하다. 자칭 ‘전업 투자자’라지만 넥타이를 매고 아침마다 출근하지 않는다. 즉 실업자다. 엄마는 ‘불량 아빠’라며 이혼하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학급 회장이자 ‘1등 아들’인 찬우는 이런 아빠가 창피하다.

“아빠가 나타났다. 덥수룩한 긴 머리를 머리띠로 추어올리고 꽉 끼는 청바지에 발목까지 오는 가죽 부츠를 신었다. 선글라스도 꼈다. 루피까지 끌고 왔다. 루피는 집에서 키우는 커다란 개로 그레이트 피레네 종이다.”(13쪽)

아빠는 학교 운동회에 연예인 같은 패션으로 등장한 것도 모자라 굽이 뾰족한 부츠를 신고 학부모 달리기를 하다 보기 좋게 넘어졌다. 친구들이 키득키득 웃었고, 루피는 마치 꼴등한 아빠의 한을 풀어 주기라도 하듯 운동장을 마구 달렸다.

찬우 아빠는 우리 사회 33만 싱글 대디의 초상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불량품’ 취급을 받는 아빠지만 그래도 아들을 위해서라면 ‘엄마 역할’에도 최선을 다한다. 학교 급식 도우미에서부터 녹색어머니회 교통안전 봉사, 준비물 챙겨주기 등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삶은 부자(父子)에게 가혹하다. 실패한 가장이므로 불량하다는 사회적 편견은 찬우와 찬우 아빠를 힘들게 한다. 급식당번으로 나선 아빠가 소희 손에 국을 쏟은 날, 찬우는 점심시간 내내 놀림을 받고 아빠에게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내 손을 잡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나는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빨리 엄마 데리고 와. 엄마 데리고 오란 말이야!’ 아빠는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서너 차례 힘껏 내리쳤다. 아빠의 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90쪽)

갈등은 다행히 절망스럽지 않다. 진솔한 소통은 부자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심각한 상황인데 작가가 경쾌하고 밝은 문장력으로 따뜻하게 감쌌다. 찬우 아빠를 ‘불량 아빠’로 만든 우리 사회가 진짜 불량한 것은 아닐까.

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