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속옷’ 호기심서 탄생한 문화인류사
입력 2010-09-30 21:22
팬티 인문학/요네하라 마리/마음산책
사실 팬티를 드러내놓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은밀하고 부끄러운 가리개로 대체 뭘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팬티 한 장을 가지고 아담에서부터 경찰 제복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문화 인류사를 분석하려고 시도한 괴짜가 있다. 더구나 여자다. 요네하라 마리. 1950년 도쿄 출생으로 ‘요미우리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알렸는데 2006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유치원 시절 아담과 이브가 왜 항상 무화과나무 잎 하나로 하복부를 가리는지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고바야시 선생님이 천지 창조를 그림 연극으로 들려준 적이 있다. 메밀국숫집 아들인 다케우치가 ‘선생님! 그 잎은 왜 안 떨어지나요?’라고 질문했다. 선생님은 말문이 막혀 손에 든 그림판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그림판을 주워 담았고, 괴로운 듯 기침을 했다.”(43∼45쪽)
그 잎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 강력 접착제로 붙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요네하라 마리는 달랐다. 40년 전 품었던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녀는 편집증에 가까운 자료 수집과 역사적 유추를 거듭했다.
창세기 3장 7절에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는 구절이 나오는 걸 발견한 그녀는 라틴어와 영어, 일본어 등을 찾아가며 정확한 번역이었는지 고증하고, 다른 문화인류학자의 저서와 비교했다. 결국 아담과 이브의 중요 부분을 가린 무화과나무를 떨어지지 않게 해준 것이 풀이나 셀로판테이프가 아니라 허리끈이었다는 그럴듯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요네하라 마리는 속옷에 대한 고찰을 통해 팬티의 기원과 어원을 추적하고, 시대와 문화의 흐름을 담아내는 담론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속옷을 통해 보통 사람의 시선에서 역사나 경제의 흐름을 포착할 수 있고, 심각한 역사적 사건과 사소한 이야기를 연결할 수도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녀는 세계의 문화인류사를 폭넓게 살피면서도 팬티라는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찾아 다녔다. ‘죄와 벌’ ‘안네의 일기’ ‘고지키’ 등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드는 문학작품을 섭렵하는 것은 물론 2차대전에 휘말려 옛 소련에 억류됐던 일본군인들의 수기를 샅샅이 찾아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각종 언어에 관한 탐구도 빼놓지 않았다. 심지어 ‘훈도시 동호회’ 같은 인터넷 사이트까지 뒤졌다.
그녀의 탐구는 사람들이 알몸을 가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천착한다. 프라하에서 살다가 1964년 고국 일본으로 돌아온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인이 수치심을 느끼는 기준에 놀라워한다.
“일본 여성들은 웃을 때 이를 보이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손으로 입을 가린다. 반면 수학여행으로 간 온천이나 대중탕의 탈의실에서 학급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었다. 나는 옷을 벗는 게 몹시 부끄러워 주저하다가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93∼95쪽)
독특한 시각과 열린 태도를 지닌 덕분에 그녀는 이 같은 소소한 경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통찰력을 발휘한다.
“누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알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부끄러움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고나 할까.”(95쪽)
모두가 당연하게 여겨온 일상의 단면도 그녀의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만나 새롭고 참신하게 부각된 셈이다. 가볍고 작은 것으로 치부될만한 팬티로 역사를 뒤집고 문화를 새롭게 분석하려는 시도가 새롭다.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주제를 평생토록 연구해 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코드로 부각시킨 유연한 사고가 놀랍다.
다만 책의 일부분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고 이를 그 시대나 문화의 표식으로 판단하려한 점은 아쉽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좀 더 신선하고 치밀하면서도 농밀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