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 ‘박영호 가옥’, 진짜 주인은 친일파의 첩… 서울시, 명칭 변경 결정
입력 2010-09-29 21:33
서울시가 중요한 역사적 사료라며 서울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에 복원한 조선시대 가옥 5채 중 2채가 경술국적(庚戌國賊) 중 한 명인 윤덕영 뿐 아니라 민영휘 등 대표적인 친일파의 첩과 그 자식들이 살던 곳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 서울시에 따르면 우리나라 태극기를 최초로 만든 부마도위 박영효가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박영효 가옥’은 실제로는 친일파 민씨의 집이었고,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두 번째 황후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순정효황후 윤씨친가’는 황후의 숙부인 경술국적 윤덕영이 주인이었던 ‘벽수산장(碧樹山莊)’의 일부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는 이들 가옥이 조선 후기 상류층 저택의 전형을 보여준다면서 1977년 시 문화재로 지정한 뒤 95∼98년 남산골 한옥마을에 복원했다.
그러나 시가 최근 2년간 다양한 문헌과 지도 등 사료를 정밀 조사한 결과, 박영효 가옥은 민영휘의 소실(少室)로 풍문여중·고를 설립한 안유풍과 동일은행(옛 조흥은행의 전신) 이사장을 지낸 민대식, 민병수, 민윤식 등 민씨 자녀가 1970년대까지 거주하던 저택 중 안채 일부와 문간채로 확인됐다. 민영휘는 친일의 대가로 자작의 작위와 은사금 5만원을 받는 등 평생 귀족의 지위와 특권을 누린 대표적인 친일파다.
박영효가 실제 살았던 집은 이 집의 옆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박영효는 이 집 외에 현재 주소로 경운동 66·88·89, 안국동 8, 경운동 89, 숭인동 76 등에서도 거주했으나 당시 건물들은 사라지고 없다.
또 순정효황후가 나고 자란 곳으로 알려진 윤씨친가는 윤덕영의 첩이 거주했던 곳으로 새롭게 규명됐다. 윤덕영은 안중근 의사가 저격해 사망한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는 제문을 낭독한 인물로,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 당시 순정효황후가 치마폭에 숨긴 국새를 빼앗아 을사오적 이완용을 능가하는 매국노다.
시는 두 가옥이 실제로 박영효 가옥과 순정효황후 윤씨의 가옥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명칭을 변경하기로 했다. 박영효 가옥은 ‘관훈동 민씨 가옥’으로 윤씨친가는 ‘옥인동 윤씨가옥’으로 각각 바뀐다.
시 관계자는 “두 가옥이 조선시대 상류층 가옥으로서 갖고 있는 건축사적 가치는 변동이 없으나 가옥의 역사성이 달라진 만큼 명칭만 변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표적인 친일파의 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한 시민은 “남산골 한옥마을은 전통문화와 역사교육의 장으로 유치원생부터 초·중학생들이 자주 찾는 곳인데 나라를 팔아 호의호식한 친일파의 잔재를 보고 무엇을 배우겠는가”라고 말했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