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R&D 사업을 해부한다] 참 불공정한 ‘대한민국 R&D’

입력 2010-09-29 18:16


국비 지원 대상과제 선정위원이 실제 수행자로 낙점

수조원의 나랏돈이 투입돼 미래 선도 분야를 찾는 중장기 산업원천기술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서 다수의 과제 수행 담당자가 사전에 국비 지원 대상 과제를 선별하는 위원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판이 선수로 뛰며 골까지 넣는 행위가 버젓이 벌어진 셈이다.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산기평)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중장기 R&D 예산이 신규로 투입된 총 1259개 과제 현황을 국회 지식경제위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했다. 산기평은 반도체 로봇 그린카 바이오 의료 등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해 연간 1조8000억원의 R&D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29일 정 의원실과 함께 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반 및 총괄, 세부 과제를 모두 포함한 1259개 과제 가운데 60.2%인 758개 과제에서 기획(실무)위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 이후 실제 과제 수행 연구자로 선정돼 국비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위원이 직접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기획위원이 소속된 기관·업체가 과제 수행자로 선정된 경우까지 합치면 총 1011건으로 80.3%에 달했다.

중장기 R&D 심사는 우선 국비 투입 대상 과제를 선정하는 기획위원회와 실제 과제 수행자를 결정하는 평가위원회로 이원화돼 있다.

기획위원들이 지원 대상 과제를 결정하면 지식경제부가 30일 이상의 공고기간을 거쳐 과제 수행 기관·업체를 공모 받고, 평가위원들이 심사해 최종 수행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나눠먹기 실태를 반영하듯 최근 이 분야 신규 과제 공모의 평균 경쟁률은 2대 1을 넘지 못했다. 2007년 1.4대 1, 2008년 1.3대 1, 2009년 1.5대 1을 기록했다. 반면 최근 3년간 기획위원이 낙점 받은 과제 비율은 2008년 53.3%에서 2010년 64.3%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 담당자는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기획위원이 과제 수행자가 되지 않으면 더 공정하겠지만 기획심사를 감당할 만한 전문가 인력풀이 넉넉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정 의원은 “인력풀이 한정돼 있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공정성·투명성 차원에서 끼리끼리 담합 구조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