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상온] 軍 개혁의 선결과제
입력 2010-09-29 17:49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포퓰리즘 대상으로 삼는 한 개혁은 요원하다”
군이 또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고강도 군 개혁을 주문한 것. 이명박 대통령은 28일 서울 수복 60주년 및 국군의 날 62주년 기념사를 통해 현재 우리 군의 문제가 무엇인지 철저히 찾아내 이를 과감하게 개혁함으로써 군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도 개혁 개혁 하다 보니 ‘개혁 피로증’이라고나 할까, 식상한 감도 있다. 하지만 막중한 국가 안보를 책임진 군의 개혁은 특정 시점에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점에서 또 ‘개혁 타령’이냐고 심드렁해할 일은 결코 아니다. 특히 북한의 3대 세습 공식화로 북한 내부에 동요가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한반도 안보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음을 감안하면 군 개혁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사실 “60년 동안 휴전체제가 지속되면서 군의 긴장이 이완된 측면이 있다”는 이 대통령의 지적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넋 놓고 있다가 당한 천안함 사태뿐이 아니다. 휴전선 철책선이 뚫려도 모르고 있었다든가 정비 불량으로 군용기가 추락하고 대포의 포신이 터져나가기도 한다. 게다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방대한 조직에 많은 인력을 안고 있는 탓인지 여전히 걸핏하면 군수비리와 인사비리 등 고질적 비리가 터져 나온다.
‘이번에야말로’라는 각오로 시급히 군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군 내부의 노력이 선행돼야 하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외부의 수술을 통해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진정한 의미의 개혁을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나 군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단순한 군 내부의 문제점 해결 차원을 넘은 국가적 국민적 과제다. 바로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행태와 포퓰리즘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을 척결하는 것이다.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예는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 중 하나로 요즘 초미의 관심사인 군 복무기간 문제를 들 수 있다. 군 복무기간은 ‘국방개혁 2020’에 따라 18개월(육군 기준)로 단축키로 됐던 것을 천안함 사태 이후 설치된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24개월로 환원할 것을 제안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온 나라가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현재 마치 장사꾼이 가격 절충하듯 중간선인 21개월로 결정돼 가는 듯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간 그 자체가 아니다. 복무기간이 우리 군의 전력 등 군사적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파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애당초 군 복무기간 단축이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라는 게 이를 입증한다.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의 경우 18개월 단축 백지화에 반대하면서 “자기들은 군대도 안 갔다 왔지 않느냐”고 정부 인사들을 비난했다. 군사적으로 봤을 때 이러저러해서 반대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정치 공세’를 편 셈이다.
원칙적으로 군 복무기간은 18개월도 될 수 있고 24개월도 될 수 있다. 심지어 다른 나라들처럼 12개월도, 아니면 그 옛날처럼 36개월도 될 수 있다. 다만 그 근거는 오로지 군사적인 필요성이어야 한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온갖 논리를 개발해 복무기간 축소나 연장의 타당성을 주장했다가 상황이 바뀌면 주장을 뒤집는 일이 계속돼서는 군 개혁을 아무리 떠들어봤자 별무소용이다.
군 복무를 마치 ‘형벌’이나 되는 양, 아니면 군 면제를 마치 ‘포상’이나 되는 양 여기는 사회적 풍토는 어떤가. 최근 여자 축구선수들이 17세 이하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하자 어떤 네티즌은 ‘미래의 남편들에게 병역면제를 해주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한다. 물론 농담이고, 여자 선수들이 정말 장해서 한 말이겠지만 거기엔 병역면제를 일종의 상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깔려 있다. 그래놓고 군에 개혁을 주문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군이라는 조직이 불가피하게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민주사회에서 사회적 여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인정한다고 할 때 정치권이나 국민들이 먼저 잘못된 관행과 인식을 고치는 게 군 개혁의 선결 과제다.
김상온 카피리더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