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프롤로그] 항상 소외이웃 위해 손 내밀 던 그 분

입력 2010-09-29 17:38


지난해인가 이주노동자의 대부로 불리는 김해성(49) 목사가 사역하시는 서울 가리봉동 지구촌사랑나눔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예배당, 사무실, 외국인노동자 임시 숙소, 간이병원 등을 둘러보았지요. 주로 중국 동포와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의 긴급피난처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건물 한쪽엔 영안실도 있었는데 산업재해사나 병사 등으로 육신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 시신을 모신 곳이었습니다. 김 목사가 영혼이나마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마련한 영안실입니다.

사실 김 목사를 잘 압니다. 그는 대학시절 학보사 편집장이었고, 저는 기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어느 한 해 전북 완주 봉동읍 김 목사의 외가로 퇴수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만경강 옆 반듯한 한옥이었습니다. 날마다 묵상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낮 시간엔 신문제작 실무와 성경공부, 독서토론 등이 이어졌는데 당시 김 목사님, 엄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공부 제대로 안 한다고 엎드려뻗쳐 놓고 지게 작대기로 패기도 했으니까요. ‘열혈당’이었습니다.

5공화국 들어서 대학 학생회 대신 ‘학도호국단’이라는 명칭으로 강압 사용됐을 때 학생회 명칭으로 신문을 냈습니다. 내용 또한 광야에서의 외침을 했으니 온전할 리 있나요. 대학 신문인데도 당시 언론으론 처음으로 폐간을 맞았습니다. 모두 잠수(도망)탔지요. 우리의 열혈 드라마는 그 후로도 계속됐지요.

그리고 목사가 되어 항상 소외당하는 이웃을 위해 손 내밀었던 그분, 스리랑카 사마리아인을 위해 물 한 바가지 준 것이 축복이 되어 그 나라 대통령과 친구가 되고 그 덕으로 귀한 코끼리 두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동물원에서 ‘코끼리 아저씨’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