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납품가, 조합에 ‘조정 신청권’ 부여

입력 2010-09-29 18:33


정부, 大·中企 동반성장 대책… 내용·문제점

앞으로 개별 중소기업은 조합이나 협회 등 기업단체를 통해 거래 대기업을 상대로 납품단가 조정 협의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납품단가나 대금결제 등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했는데도 대기업이 협의에 응할 생각이 없거나 개선 의사가 없으면 곧바로 분쟁조정협의회를 여는 ‘패스트트랙’ 제도가 도입된다. 지금은 기업 간 분쟁 발생 시 10일 내 협의해 30일 내 합의하되, 합의가 안 되면 분쟁조정협의회를 열어 강제조정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공정위가 시정명령토록 하고 있다.



정부는 29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 대해 업계 자율에 맡긴 방안이 주를 이루고 ‘납품단가 연동제’ 등 핵심 내용이 빠져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요 내용=그간 대기업의 보복이 두려워 손해에도 불구하고 단가 조정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중소기업을 대신해 협동조합이 나서 조정협의 신청을 하게 됐다.

또한 대기업이 계약 당시 정했던 납품대금 가격을 일방적으로 감액하던 관행도 사라질 전망이다. 원사업자(대기업)가 감액 시 반드시 사유와 산정 기준 등을 명시한 자료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과 품목에는 대기업 진입이 힘들어진다. 이를 위해 오는 12월 민간 기관인 ‘동반성장위원회’가 구성돼 3년마다 보호 분야를 선정, 대기업의 자율적인 진입 자제를 유도할 계획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빼가기’도 어려워진다.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는 목적, 대가 등을 명기한 서면요청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이나 생산성 향상, 인력양성 같은 사업에 지원할 경우 대기업은 7%의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실효성 있을까=‘을’의 입장에 서 있는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납품단가 문제다. 정부의 고민이 섞인 대책이 나왔지만 조합이 단가조정 협상에 참여하거나 일률적인 기준가격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면서 종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체의 ‘익명성’ 보장이 단가협상에 들어가면서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 관계자는 “협상권까지 조합에 부여할 경우 단체행동이 불가피해지고 결국 이는 중소기업 간 카르텔(담합)로 변질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변경하려면 서면 입증을 의무화한 것과 관련, 입증 책임을 대기업에 둬 자료 확보를 중소기업에 떠넘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과 품목’ 신설은 좋지만 사실상 강제성 없이 대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중소기업들은 일단 환영하면서도 핵심 요구사항이 빠져 아쉽다는 입장인 반면 대기업은 일부 방안이 반강제적으로 추진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에서 “대·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도급법 전속고발권 일부 제한’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등이 포함되지 않은 점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동반성장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자율적으로 할 일을 정부가 나서서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김아진 문수정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