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金치…배추 1포기에 1만5000원

입력 2010-09-29 05:57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김장환(63)씨는 28일 오후 부인과 함께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찾았다. 혹시 다른 곳보다 싸고 좋은 배추를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먼 걸음을 한 것이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무 몇 개만 사들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기름값만 버렸다”는 김씨는 “돼지고기 한 근이 만원 한다는데 배추가 고기보다 비싸니 서민들은 뭘 먹느냐”며 한숨을 지었다.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시장 상인들도 값이 너무 비싸 손님들이 사지 않는다며 울상이다. 반면 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은 포장 김치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식당들은 김치를 내놓는 데 야박해졌고, 직원식당이나 학교 급식에도 배추김치를 대체한 음식이 오르고 있다.

이날 가락시장에서는 배추 한 포기당 1만2500원에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적정 가격은 아니라는 것이 상인들의 이야기다. 상인 김경자(66·여)씨는 “원래 1만5000원짜리인데 너무 안 팔리니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며 “1986년부터 25년 동안 장사를 했지만 이렇게 배추가 비싼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배추 값이 비싸다 보니 포장 김치나 대형마트 반찬코너에서 판매하는 김치 판매량은 부쩍 늘었다. 주부 배경순(53)씨는 “중국산이다 뭐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양념값이라도 빠지는 게 어디냐”며 2㎏짜리 포장 김치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포장 김치 물량은 심하게 달리고 있다. 서울 잠실동의 한 대형마트 직원 임영숙씨는 “손님들이 많이 찾는 4㎏짜리는 이틀 전부터 매진됐는데 물건이 안 들어오고 있다”며 “가격은 6월부터 그대로이긴 한데 전에 있었던 가격할인행사나, 하나 더 주는 행사 등은 배추 값 급등 이후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인근 다른 대형마트 김치코너에서는 배추김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진열대에는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뿐이었다. 또 포장 김치 코너의 5개 진열대 중 2개는 두부와 콩나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마트에 포장 김치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포장 김치를 판매하는 주요 업체들은 배추 공급량이 부족해 유통업체 등과 계약한 물량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부 업체들은 배추 값이 잡히지 않으면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 물량 수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포장 김치 시장은 지난해보다 13%가량 성장했다. 하지만 포장 김치 업체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배추 값이 급등하고 있어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은 나지 않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포장 김치 제조업체마다 일시적으로라도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식당에서도 김치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날 점심 식사시간 서울 여의도의 한 칼국수 집. 종업원들은 주문을 받으면서 “배추 값이 너무 올라 김치를 절대 추가로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럿이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김치를 양보했다.

서울 구로동의 한 회사 직원식당에서는 추석이 지나고부터 배추김치가 메뉴에서 빠지고 열무김치와 단무지가 올랐다. 이 식당을 자주 찾는 직장인 박모(38)씨는 “이 정도면 양호한 것”이라며 “집에서는 추석 전 김치가 떨어진 뒤부터 아예 식탁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배추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6배씩 올랐다. 마트에서는 보통 일주일 단위로 제품 가격이 바뀌는데 배추는 매일 시세가 급변해 수시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이를테면 추석 전 4480원이던 이마트 배추 값이 28일 현재 6450원이고 29일부터 1만1500원으로 오르는 식이다.

이런 상황은 김장철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추석이 지나면 채소 가격은 하향 안정세를 보이지만 배추 값은 다음달 중순까지도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종가집 김치 담당 문성준 매니저는 “봄철 이상 기온, 여름철 폭염과 폭우의 영향으로 배추 물량 자체가 부족한데다 김장 배추의 씨 뿌리는 시기마저 늦어졌다”며 “김장철에 배추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수정 김수현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