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고상두]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아
입력 2010-09-28 17:56
내일은 한·러 수교 20주년이다. 한·러 수교는 동북아 질서를 뒤바꿔 놓았다. 러시아에 뒤질세라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고, 외교적 고립을 우려한 북한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응했다. 한·러 수교를 이끌어낸 북방정책은 한국 외교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하지만 수교 이후의 한·러 관계는 굴곡의 역사요, 이혼과 재혼의 반복이었다. 땅이 많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허허벌판이라서 실망했고, 땅에서 석유가 나고 도로가 생긴다고 해서 다시 애정을 품는다. 우리는 한·러 관계를 상호보완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러시아는 자원을, 한국은 상품과 자본을 제공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초강대국의 자부심을 가진 러시아는 자원수출국 이미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러시아는 외국기업의 석유 가스 채굴 및 반출을 규제하는 등 자원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 시절부터 약속하였던 시베리아의 에너지 개발과 철도건설 등에서 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 역학관계 급변
한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이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란 동맹보다는 낮은 단계이지만 단순한 우호관계를 넘어서서 제3국을 겨냥한 전략적 제휴 의지를 내포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을 보면 ‘과연 한국과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협력하는 동반자 관계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재확인하고 활용하는 신 북방정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과 접경하고 있고, 오늘날 동북아에서 외교 전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비스마르크는 “민족의 운명은 외교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역학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중국은 잠자는 용이며, 중국이 깨어나면 세상이 소란스러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예언이 200년 만에 적중하고 있다. 중국은 ‘민주화 없는 경제대국화’의 길을 걸음으로써, 지역평화의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부상하는 중국은 주변국을 위협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위압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한국 외교정책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19세기 말 열강들이 한반도에서 각축전을 벌일 때는 조선이 독립적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조선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조선은 열강의 외면 속에 식민지화되었다.
한국의 근대사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주변 열강들과 전방위적 근린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국과 평화적 동반자관계를 구축해 우리의 외교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국 용과 러시아 곰이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
러와 협력적 관계로 나가야
때마침 러시아가 아시아 접근정책을 펴고 있다. 다음 주 브뤼셀에서 열리는 제8차 아셈회의에 러시아가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회원국으로 참여한다. 이제 한·러 관계를 새롭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협력적 관계로 변모해야 한다. 러시아는 한국과 선진국 형 협력을 원한다. 그것은 과학기술, 교육, 우주개발 등 분야의 협력이다. 따라서 자원개발이 협력의 전면에 대두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러시아는 스스로도 문화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지만, 오천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을 경이롭게 생각하고, 한국의 수준 높은 문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금년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있었던 한국 미술 특별전에는 약 57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였다.
한·러 양국의 교류협력이 경제적 이익보다 과학기술과 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때 보다 굳건해질 것이다. 그리고 양국 국민이 서로 문화적 공감을 나누는 공공외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고상두 연세대 유럽지역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