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이산가족 상봉 장소

입력 2010-09-28 17:47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처음 이뤄진 것은 분단 40년 만인 1985년. 그해 9월 남북한은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행사를 가졌다. 남측 35명, 북측 30명의 이산가족이 상대측을 방문했다. 상봉 장소는 서울의 쉐라톤 워커힐호텔과 평양의 고려호텔이었다. 남측 어머니는 수십년 만에 만난 북측 아들을 부둥켜안고 오열했으며, 아들은 ‘오마니’를 목메어 부르며 흐느꼈다.

이산상봉은 71년 대한적십자사가 북측에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회담을 제의하면서 시작된 기나긴 남북 협상의 결과물이다. 아쉽게도 단발에 그치고 말았다. 노태우 정부 때인 89년과 92년에는 상봉 재개에 합의했음에도 정치적 난관으로 무산됐다. 김영삼 정부 때는 단 한 번의 협상조차 없었다.

이산상봉에 물꼬를 튼 것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두 정상은 이산상봉을 합의문에 넣었고, 2개월 뒤 실현됐다. 15년 만의 재개였다. 정례화는 이루지 못했지만 이후 1년에 두 번 꼴로 상봉이 이뤄졌다. 김대중 정부 때 6차례, 노무현 정부 때 10차례 성사됐다. 대북 강경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지난해 9월에 한 번 열렸다.

지금까지 남북 간 이산상봉 협상에선 규모가 논란거리였지 장소는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2000∼2001년 3차례는 서울과 평양을 상호 방문하는 형식이었다. 숙소는 항시 워커힐호텔과 고려호텔이었지만 상봉 행사는 코엑스나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리기도 했다. 2002년 이후에는 금강산이 상봉 장소로 굳어졌다. 금강산호텔에서 숙박하고 온정각에서 상봉하는 것이 관례화됐다.

남북한은 상봉 활성화에 대비해 2008년 금강산(고성군 온정리 조포마을)에 이산가족면회소를 지었다. 남측 예산 550억원을 들여서다. 지난해 처음, 한 번 이곳에서 상봉 행사를 가졌다. 크고 작은 연회장과 206개 객실을 갖추고 있으니 상봉 장소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측이 엉뚱한 고집을 부리고 있다. 이산상봉을 먼저 제의한 북측은 상봉 장소와 관련, 이산가족면회소를 쓰려면 중단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이산상봉과 금강산 관광은 전혀 별개 사안임에도 저들은 이를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억지다. 북측이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면회소의 문을 하루빨리 활짝 열어야 한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