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지우고 싶던’ 현실 지금은 ‘찾아야 하는’ 기억”
입력 2010-09-28 17:39
자신의 이야기로 다큐영화 ‘나를 닮은 얼굴’ 만든 입양인 출신 태미 추 감독
‘브렌트’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다른 한국인은 고사하고, 동양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성장한 그가 알게 되었던 건 자신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입양아라는 사실 뿐. 성장 과정에서 스스로 정체성을 자각하기에는 그의 환경이 너무나 척박했다. 그는 30년이 지난 뒤에야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생모를 찾았고, 태미 추(35) 감독은 그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서울 경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추 감독은 이 영화를 설명하며 “거의 모든 입양인들이 브렌트와 같은 경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9살 때 쌍둥이 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입양돼 한국어·한국 문화와는 완전히 차단된 환경에서 자랐다.
“저 스스로가 백인의 환경에서만 자랐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 놓치고 살았던 부분들을 생생하게 미디어에 담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선택했습니다.”
입양인 출신 감독이 만든 ‘나를 닮은 얼굴’은 우리가 입양인들을 생각할 때 흔히 갖기 쉬운 편견을 배제해 담백하고 진솔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공장에서 일하던 명자는 18세의 나이로 아이를 낳게 된다. 명자의 가족들은 아이를 몰래 입양시켜 버리고, 그 후 명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명자의 아들 성욱(브렌트)은 전형적인 미국 중간계층 가정에 입양돼 교육을 받은 뒤 결혼하고 가정을 이뤘다. 영화는 이들 모자가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TV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고 화해하며 소통하는 과정을 비췄다. 헤어진 뒤 처음 대면하는 순간 어머니가 자신과 닮은 아들을 보며 핏줄임을 직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추 감독의 삶도 브렌트와 비슷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던 그는 대학을 마치고 양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생모를 찾았다. 추 감독의 어머니는 집안이 어렵던 시절 자매를 외국으로 입양시키면서 관련 기관으로부터 “입양된 뒤에도 딸들과 계속 연락이 가능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 감독은 부모와의 연락은커녕 함께 입양된 쌍둥이 자매와 한국어 대화도 할 수 없던 날들을 보냈다고.
한국인 가족들과 재회하며 잠시 동안 한국에 체류한다는 게 어느덧 8년째. 추 감독은 “나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기 위해 당분간이라도 있자고 생각한 게 이렇게 됐다”며 “스스로 마음의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한국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감독은 주인공 브렌트와 어머니 노명자씨를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사연도 들려줬다. “노명자씨와 이메일로 연락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입양아 캐스팅을 위해 웹사이트에 광고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노명자씨의 아들 브렌트로부터 연락이 오더군요.” 영화는 30일 서울 감고당길 아트선재센터에서 단관 개봉할 예정. 추 감독은 해외입양인연대(GOAL) 등 입양인 커뮤니티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