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교향악단 문화사업 ‘우리동네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아이들에게 꿈을
입력 2010-09-28 21:26
지난 16일 오후 4시 서울 구로동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바이올린 켜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지하 1층 연습실에 가니
초등학생 수십 명이
저마다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소란스럽게 장난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제대로
음을 못 내면서도 연습에 열중하는
아이도 있었다.
“벌 받으러 나오는 거 같잖아. 왜 인사를 그렇게 해. 자신 있게 하란 말이야.”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사이로 선생님의 호통이 울려 퍼졌다. 이날 연습은 다음 날 있을 향상음악회를 앞둔 최종 연습이었다. 비록 학부모와 친구들 앞에서 하는 공연이지만 처음으로 무대에 서는 기회라 선생님은 무대에 등장해서 인사하는 것부터 연주까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악보보다 빨라진다”면서 아이를 지적하던 선생님은 연주를 마친 아이에게 “잘했다”고 격려하고 온화한 미소를 보냈다.
일반 음악학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날 자리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여기에 모인 아이들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올해 5월부터 시작한 ‘우리동네 오케스트라’ 프로그램 참여자다. 지역밀착 문화복지 사업을 표방하는 이 프로그램은 장기적인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삶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로그램에 뽑힌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30명으로 이들은 앞으로 4년간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게 된다. 매년 초등학교 3학년 30명씩 뽑아 2013년에는 1∼4년차 학생 120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악기 대여부터 교습 등 모든 과정이 무료다. 베네수엘라에서 시행돼 아이들을 범죄로부터 예방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엘 시스테마’가 롤 모델이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악기를 접하는 것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돼 클래식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음악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은 것은 이제 겨우 4개월 정도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바이올린 교육을 맡고 있는 김영훈 교육단원은 “원래 목적이 아이들의 음악적인 기량 향상보다는 정서를 바꿔주는 것이었다”면서 “같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경쟁관계에 놓이지만 오히려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습실은 소란스러웠지만 자기 차례가 끝난 아이는 스스로 짐을 정리해 다른 아이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조용하게 문을 나섰다. 모든 아이가 그렇게 했다.
아이들은 음악을 잘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자기 키 만큼이나 큰 첼로를 등에 업고 연습실을 나서는 김효빈(9)양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함께 연주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장래희망을 묻자 “음악은 좋아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패션디자이너”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수가 꿈이라는 임기령(9)양은 예전에 피아노를 공부하다가 이곳에 와서 바이올린으로 바꾼 경우. 임양은 “여기 오기 전에는 이 시간에 집에서 공부를 했는데 친구들과 연주를 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연주회는 잘할 자신이 있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서울시향 문화사업팀 이주연씨는 “저소득층 가정 아이도 있고 일반 가정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모두 저소득층 가정으로 할 경우 외부의 시선이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하나로음악재단이 운영중인 M4ONE(엠포원) 아카데미도 유사한 프로그램이다. M4ONE 아카데미는 서울, 경기, 강원, 영남 지역 28곳의 기관에서 음악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저소득층은 무료로, 일반인들은 5만∼20만원의 교육비를 내면 된다. 6개월 1학기를 마치면 제자음악회를 통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인다. 학생, 일반인 구분 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현재 484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하나로음악재단 관계자는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화합하고 소통하는 무형의 가치를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공연된 뮤지컬 ‘웰컴맘’은 특별한 배우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은 부모와 떨어져 복지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20명의 그룹홈 아이들. 아이들은 전문 뮤지컬배우와 함께 오랫동안 연습하며 전문배우 못지않은 실력을 뽐냈다. 이 공연은 대형공연장인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됐다.
‘웰컴맘’은 재개발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아이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아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배역에 몰입해 연기했고, 객석을 찾은 관객은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무대에 선 아이들은 밝아졌고 자신감이 넘치게 됐다”면서 “이들이 무대에 선다는 사연을 듣고 온 관객 중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은 ‘저 애들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