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2군 캠프를 가다] ① 넥센 히어로즈 ‘재활의 터’ 강진 훈련장

입력 2010-09-28 21:34


프로야구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야구장에 들어서면 화끈한 홈런과 속 시원한 삼진 아웃, 그리고 스타플레이어들의 화려한 플레이가 관중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억대 연봉을 받으며 그라운드에서 뛰는 스타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지금 2군 경기장에서는 무명 선수들과 왕년의 스타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빛나는 내일과 제 2의 전성기를 되찾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의 피나는 노력과 각오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원조 ‘닥터K’ 김수경 부활투를 담금질하다

#다산의 유배지 강진에 가보니…

지난 15일. 서울에서 차량으로 7시간 만에 도착한 전남 강진 베이스볼 파크.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2군 경기장이 있는 곳이다. 야구장 너머는 남해 바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야구장에선 갯벌에서 먹이를 잡는 왜가리의 울음 소리만 들렸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는 차로 10분 거리였다. 그야말로 절해고도와 같은 분위기였다. 실내 연습장은 태풍 곤파스가 토해낸 바람으로 완전히 폐허가 돼 있었다. 공이 도로와 바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된 그물망도 여러 곳이 쓰러지고 찢어져 있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고요함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넥센 2군 선수들의 훈련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투수 10명이 연습하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금민철과 이보근, 배힘찬 등 올 상반기 눈에 띄는 활약을 했지만 소리없이 자취를 감춘 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가운데 유난히 목소리가 큰 선수가 있었다. 김수경(31)이었다. 그가 누구인가. 탈삼진왕을 일컫는 ‘닥터K’의 원조,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현대의 마지막 황태자’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던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던 인물이다. 1998년 프로에 입단해 그해 12승 4패로 승률 1위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99년에는 탈삼진왕, 2000년에는 다승왕이었다. 올해까지 111승을 기록해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100승 이상을 기록한 22명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올해는 세월의 무게를 피할 수 없었는 지 지난 4월 6일 대 삼성전 이후 시즌 내내 이곳 강진에 머물러 있었다. 반나절 동안 훈련과 재활에 몸부림치고 있는 그를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가을야구와 최고 투수

오전 훈련을 마치고 먹는 점심. 이날도 김수경을 비롯한 2군 선수들은 화기애애하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때가 때인 만큼 김수경에게 곧 다가오는 가을야구에 대한 소감을 물어봤다. 김수경은 “이전에는 포스트시즌은 물론 한국시리즈는 당연히 간다고 생각했다”면서 “나도 한국시리즈에서 여러번 승리를 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수경은 현재 한국시리즈 최연소 승리·세이브 투수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도 4개나 있다. 한 팀에서 그보다 우승 경험을 많이 한 현역 선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TV에서 그 시절을 보면 감회에 젖는다고 한다. 특히 2000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현대와 두산은 3승3패로 팽팽히 맞서있었다. 김수경은 마지막 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현대의 6대 2 승리를 이끌며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현대가 거둔 4승 중 2승을 책임졌다. 당시 투수왕국 현대의 핵심 선발이었다는 것도 자랑하고 싶은 눈치였다. 김수경은 주위 후배들에게 “우리는 투수왕국이었다. 98년에 선발투수 다섯명 전원이 10승 이상을 기록한 것은 아마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이라며 “훌륭한 선배들이 너무 많으니 그때는 잘해도 선발 라인업에서 빠질 수 있다는 걱정을 많이 했다”며 웃었다.

현재 각 팀에서 뛰고 있는 투수 중에서는 누가 가장 자신과 비슷하고 괜찮은 지 물어봤다. 김수경은 자신이 던지는 스타일이 SK 김광현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광현을 보면 시원시원하게 공을 던진다”면서 “강약 조절없이 밀어붙이는 모습이 나를 닮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최고의 투수는 한화 류현진이라고 단언했다. 류현진이 스피드에 기교와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 김수경은 “여유는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부릴 수 없다. 선수들이 공을 세게 던지는 이유는 불안해서 그런 것이다. 나도 그랬다. 현진이는 이미 그것을 이겨낸 선수”라고 극찬했다.

#“자신감마저 없으면 2군 생활 못해”

오후 2시. 이날은 롯데와의 2군 경기가 강진 베이스볼 파크에서 열렸지만 김수경은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부상을 입은 선수 3명과 재활에 몰두하고 있었다. 김수경은 재활을 하면서 띠동갑인 신인 김정훈(19)과 이야기를 나눴다. 김정훈이 “사람들이 나보고 포볼맨이라고 한다. 첫 경기에서 단추를 잘못 끼웠더니 계속 볼만 던지게 돼서 2군으로 내려왔다”고 투덜거렸다. 이에 김수경이 “너무 포볼을 의식해서 던져서 그렇다”고 답했다. 김정훈이 “올해 6경기 밖에 나오지 못했다”면서 “그래도 1군 선발 경기만 나가면 자신이 있는데 기회가 올 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김수경은 “올해 1경기밖에 못 뛴 나보다 낫다. 그래도 자신감이 있으니까 보기 좋다. 여기서 자신감마저 없으면 못버틴다”고 위로했다.

김수경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올해처럼 2군에 오래 머문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곳에 있으면서 2군 선수들의 마음을 알게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숙소생활을 하는 탓에 훈련을 마치면 마땅히 할 것이 없다.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특히 강진은 외딴 곳이라 더욱 그렇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도 2군 선수들이 겪어야 하는 몫이다. 김수경도 3년 전 결혼을 했지만 집이 인천 주안인 탓에 1주일에 한 번 가면 많이 가는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감 마저 잃어버리면 절대로 성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의 고충을 듣고 자신감을 키워주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2군도 안보이는 곳에서 훈련과 시합을 많이 한다. 환경이 좋지 않아서 안스럽지만 열심히 하면 분명히 내년부터라도 1군에서 뛰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 모든 것 쏟아붓는다”

비록 어린 선수들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김수경은 야구를 하면서 올해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올해처럼 5개월 이상 2군에 오래 머문 적은 없었다. 고질적이었던 무릎과 어깨, 허리통증 등은 이미 없다. 하지만 구속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고 구속이 시속 136∼7km를 왔다갔다하고 있다. 옆에 있던 조규제 재활코치는 “구속이 3km만 더 올라와도 충분히 1군에서 통하는데 그게 너무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본인도 지금 상황이 위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30살을 넘은 나이인 만큼 올해 내내 재활에 매달렸는데 내년마저 성적이 안나올 경우 자칫 선수 생활을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좋다고 한다. 2006년과 2007년의 상황이 지금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2006년 김수경은 부진에 시달리며 4승에 머물렀다. 2군에도 처음으로 두달간 있었다. 하지만 동계훈련에서 컨디션을 끌어올려 2007년에는 12승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김수경은 “올해가 그 때랑 비슷하다. 팀도 그렇고 개인도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도 있다. 내년에 10승 이상을 거두면 가을야구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했다.

팬들에게도 각오를 내비쳤다. “옛날 모습을 기대하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 못해 죄송합니다. 내년에는 단순히 잘해야된다가 아닌 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각오로 뛸 것입니다. 동계훈련부터 내 야구 인생에 후회가 없도록 준비할테니 기대해 주십시오.”

강진=글·사진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