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대통령과 국가意志
입력 2010-09-27 17:45
이명박 대통령은 실무에 강하고 현장에 강하다. 공식 행사에서 비서가 써준 글을 읽는 이 대통령에게서 말의 정채(精彩)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시장과 서민들을 찾아가서 하는 말들은 정곡(正鵠)을 찌른다. 기운이 살아 있다. 지난 7월 22일 이 대통령은 서울 화곡동에 있는 한 미소금융회사 지점을 찾았다가 캐피털회사의 이자율이 40∼50%라는 말을 듣고는 “사채 이자와 똑같지 않느냐”며 놀랐다. “대기업이 하는 캐피털회사가 불쌍한 사람들에게 이자를 이렇게 많이 받으면 되겠나”고 말했다. 현장을 잘 안다고 자부해 온 이 대통령은 이날 목격한 서민금융 실상에 대해 분노를 느낀 것 같다. “큰 재벌에서 이자를 일수 이자 받듯이 받는 것은 사회정의상 안 맞지 않느냐”고 한 반문으로 짐작된다.
대통령의 현장 감각은 한 달도 안 돼 청와대 참모진에 의해 ‘공정한 사회’라는 작품이 됐다.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원칙이자 가치로 제시했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 이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크게 주목되지 않았다. 으레 해보는 덕담이거나 아니면 구두선(口頭禪)에 그칠 것으로 간과됐다. 뒤이은 개각에서 쪽방촌에 투기한 장관 후보가 나오고, 외교부 장관 딸의 특혜채용이 폭로되기 전까지는.
참모가 總論을 만들어서야
이 대통령의 실무적 공력(功力)은 이때부터 발휘됐다. 회심의 총리 후보자와 수족같이 여기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신임을 거두어 들였다. 2년 반 동안 MB외교의 전령사 역할을 하며 G20 유치를 비롯해 실적을 쌓아온 외교부 장관을 일고(一顧)의 배려 없이 냉정하게 경질했다. 이들을 용인하면 ‘공정한 사회’란 가치가 잉크도 마르기 전에 훼손된다. 대통령의 판단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공정의 주가는 크게 올라갔다.
우리 사회 제 분야에서 불공정은 얼마나 많은가. 굳이 찾지 않아도 발에 차이는 게 불공정이다. 공정한 사회가 일으킨 파문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공정하기만 하면 우리나라는 발전할까. 우리 사회에서 공정은 평등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설명했지만 우리 사회는 결과의 차이가 크면 공정하지 않은 걸로 간주한다. 공정한 사회는 우리 사회를 미국의 ‘정치적으로 바르게 말하기’처럼 무진장한 논전(論戰) 속에 빠뜨리거나, 지난 정권의 ‘과거사 바로잡기’처럼 무모한 사정(司正)이 되어 국가 에너지를 탕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각론에는 강하다. 총론을 만드는 일은 청와대 참모들의 몫이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꿴 어느 참모의 미사여구(美辭麗句) 때문에 정작 필요한 국가적 과제를 추진하는 데 발목을 잡히는 것은 아닐까. 참모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지 대통령의 의식을 규정하는 역할이 아니다. 나라의 발전 방향을 찾고 국민을 통합하여 밀고 나가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다. 대의민주주의는 그 같은 합의에서 성립한다. 공정한 사회가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과제인 것은 맞지만 국가의 실천적 과제는 아니다.
公正보다 화급한 통일 대비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따로 있다.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 중 하나는 대북 정책의 일관성이다. 비핵-개방-3000 정책은 몇 번의 굴절될 뻔한 고비가 있었지만 견지되고 있으며 북한 정권에 실질적인 타격이 됐다. 여기서 나아가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 말미에 제시된 통일세를 제안했다. 대북정책의 전기가 될 만한 이 개념은 구체적 프로그램 제시 없이 가볍게 언급되는 바람에 회의론만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 깊숙하게 연구되고 있는 프로젝트임이 뒤늦게 알려졌다.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의 국가 의지는 통일이어야 한다. 북한의 체제변화가 임박한 이때 국가의 의지는 북쪽을 향해야 한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