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광웅] 맛을 멋으로 승화시키려면

입력 2010-09-27 17:43


“음식이나 사람이나 口味만으론 안돼… 모든 것이 전체 분위기에 녹아내려야”

한가위 명절이 지났는데 아직도 음식 맛이 입안에서 맴도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요리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 중 노예에게나 알맞은 기술이라고 했다지만 요즘 음식은 고급문화의 정수가 되었다. 음식이 맛있다는 말은 우선 입 안에서 단맛을 포함해 만족한다는 뜻이다. 입안의 맛감각은 그러나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 맛 등 오미(五味)가 있어 달아도 시어도 써도 짜도 매워도 다 맛이다. 시메 사바처럼 식초며 레몬을 많이 쓰는 일본 음식이나 라임을 많이 쓰는 태국 음식은 신데도 맛있다. 그런데 맛으로 말하면 입안의 감각만으로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오미라고 할 때 주로 구미(口味)를 말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첫째, 눈으로 보는 맛이 있다. 시미(視味)다. 일본 음식은 특히 시각을 끈다. 그러나 요즘 분자요리며 퓨전 음식을 차릴 때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해 음식의 형태를 입체적으로 그럴듯하게 디자인해 그릇에 내놓는다.

둘째, 후미(嗅味)다. 냄새가 좋아야 한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하는데 대개는 향신료로 향을 낸다. 청국장을 두고 냄새만 없애면 세계적 음식이 된다고 말하지만 청국장의 진미는 맛과 영양에다 특유의 냄새에 있다. 냄새가 고약하다고 해서 음식이 아닌 것이 아니다. 한 번은 미국에서 온 교수들과 인사동에서 저녁을 함께했는데 한국이 초행인 이들이 청국장을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너무나 예쁘고 고마웠다. 개성 사람들이 김치에도 넣는 고수는 냄새로 치면 역겨울 때가 있지만 그 맛을 알면 안 먹고는 못 배긴다. 중국 음식이나 동남아 음식에는 필수이고 요즘 한국에도 많이 보급되었다.

과일이지만 두리안 같은 것은 냄새 때문에 먹지 않는 사람이 많다. 중국 명절 때 먹는 추월병(秋月餠)에는 오리 알을 썩혀 소를 넣은 것도 있는데 그야말로 굳게 맘먹고 먹지 않으면 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로마인이 아끼고 사랑한 가룸이나 리쿠아멘은 발효시킨 생선 소스로 코를 자극해 몸서리를 칠 정도이다. 그러나 맛은 일품이다. 향긋하진 않아도 독특한 냄새 때문에 음식 맛이 돋아난다.

셋째, 손맛(手味)이다. 어머니의 손맛으로 빚은 음식이 남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차원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손맛은 손으로 집어 먹으며 느끼는 맛이다. 서양에서는 핑거 푸드(finger food)라고 해서 피자, 햄버거 등을 이런 음식의 대표로 친다.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보통 피자나 햄버거를 칼로 썰어 먹는데 이건 음식 먹는 방식이 아니다. 손으로 먹어야 맛이 별나다. 요구르트도 손으로 먹는 인도 사람처럼 되려면 아직 멀긴 했지만.

넷째, 기미(器味)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맛은 손과 눈과 코와 입으로 느끼지만 그릇의 맛을 알기는 쉽지 않다. 음식은 그야말로 어떤 그릇에 담았느냐에 따라 맛이 180도 달라진다. 질그릇에 먹는 설렁탕과 서양 도기에 먹는 설렁탕의 맛이 같을 수 없다. 소바를 대살에 얹은 것과 양은그릇에 내놓는 것하고는 느낌이 천양지차다. 그릇만 아니라 도구도 맛을 가른다. 나는 양갱이 같은 것은 나무 포크로 먹지 스테인리스 포크로 먹지 않는다. 반드시 값비싼 그릇을 쓰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릇과 음식이 어울려야 맛이 배가 된다. 내가 가끔 가는 어느 식당 주인은 그릇에 미쳐 돈 모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유만 있으면 그릇을 사 모으는 취미에 빠졌다.

맛의 백미는 또 있다. 시미, 감미, 풍미 같은 것이 그것이다. 시미(詩味)는 시로 표현되는 정취로서 시적 분위기를 말한다. 감미(感味)는 느끼는 맛이다. 피부로든 오감이든 육감이든 느낌으로 다가오는 전체 분위기를 말한다. 풍미(風味)는 음식의 고상한 맛을 말한다. 멋있고 아름다운 사람더러 풍미가 넘친다고 말한다.

음식이나 사람이나 나라나 풍미가 있으려면 구미만으론 안 된다. 김치나 떡볶이에 수백억원씩 들여 한식 세계화를 외치려면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차려 내오는 순서도, 그릇과 색깔도 제대로 맞아야 하고 서비스하는 사람은 물론 식당을 포함해 모든 것이 스마트하게 전체 분위기에 녹아내려야 한다. 이 순간이 맛이 멋으로 승화되는 찰나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