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야생동물과의 공존

입력 2010-09-27 17:43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북한산국립공원에 올라갔다. 이틀 전 중부지방에 큰 비가 내렸지만, 우리 산들은 이맘때쯤 어김없이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해 준다. 향로봉 근처 조망지점에서 남산과 관악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멀리 영종도와 강화도 마니산, 크고 작은 섬들이 뚜렷이 보인다.

이곳에서 보면 동쪽부터 북악산, 인왕산, 안산(무악산), 백련산으로 이어지는 산들과 삼각산(북한산의 옛 이름) 및 도봉산은 원래 하나의 생태계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주택가와 도로, 상가가 마구 침범해 들어와 손과 발, 팔과 다리가 잘린 모양새가 됐지만, 4대문 북쪽의 이 산들은 100년 전만 하더라도 호랑이와 멧돼지의 영역이었다. 이들 거대 포유류는 먹이활동을 위해 넓은 산악지역이 필요하다.

올 가을에는 도토리가 많이 열리지 않아 멧돼지가 민가로 많이 내려올 것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은 보고 있다. 사람들은 멧돼지의 천적이 사라져서 개체 수가 느는 바람에 사람 사는 곳에 출몰하고 농작물을 해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멧돼지 개체 수는 지난 10년간 감소추세다. 또한 멧돼지가 자주 나타나고, 멧돼지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큰 곳은 개체 수가 적은 편인 경기도와 충남에 집중돼 있다.

결국 공단, 택지, 도로 건설에 의한 서식지 분할 때문에 멧돼지들이 산 아래로 훨씬 더 자주 내려오게 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드넓은 산지가 보전되고 있는 지리산 인근 마을에서는 멧돼지에 의한 피해 신고가 거의 없다고 한다.

세계적 환경연구소인 월드워치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조류의 12%, 포유류의 23%, 양서류의 32%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생물 다양성 감소의 원인을 5가지로 요약하고, 이들의 머리글자를 따서 하마의 준말인 히포(HIPPO)라고 불렀다. 이 요인들은 서식지 상실(habitat loss), 외래종 침입(invasive species), 환경오염(pollution), 인구증가(population growth), 소비를 위한 생물종 과다 착취(overexploitation of species for consumption) 등이다. 처음의 세 요인은 뒤의 두 요인으로 생긴 것이고, 결국 대부분 인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멧돼지 피해에 대한 즉흥적 정부 대책은 대량 포획이다. 멧돼지가 지금은 서식환경이 좋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겠지만, 국토가 급증하는 고속도로로 더 촘촘히 분할되고 나면 길을 잃을 것이다. 대규모 개발과 기후변화의 시기에 야생동물이 길을 잃는다는 것은 때로는 멸종을 의미한다. ‘멧돼지가 중요하냐, 사람이 더 중요하냐’는 식으로 따지면 답이 안 나온다. 농작물피해기금을 만들어 사냥금지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전북 무주군의 사례처럼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국토와 생태계를 인간의 입장에서만 바라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야생동물의 눈높이일지 모른다. 여전히 논란에 휩싸인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이유 가운데 비교적 폭넓게 동의를 얻고 있는 것도 생태계 파괴와 종 다양성의 감소 우려다. 이미 법정 보호종들인 흰수마자, 묵납자루, 미호종개 등 다양한 민물고기와 흰목물떼새, 재두루미 등 조류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장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지덕(至德)의 시대에는…산에는 지름길이나 굴이 없었고, 못에는 배나 다리가 없었다. …금수들이 무리를 이루었고, 초목이 마음껏 자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짐승들을 끈으로 묶어서 끌고 다니며 놀 수 있었고, 새 둥지를 끌어당겨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자연에 대한 착취가 없었던 시절로 되돌아가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인간중심의 자연관에서 벗어나서 국토의 장래와 대규모 개발사업을 재검토해 보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