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교회 이론 정립한 사귐의교회 김현진 목사 인터뷰

입력 2010-09-27 16:45

[미션라이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고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었어요. ‘구원이란, 교회란 무엇인가’를 두고 항상 허전했거든요. 그러다 군 제대 후 1983년 강원도 태백 예수원에서 공동체적 삶을 깨닫게 됐습니다. 초대교회처럼 살 수 있다는 데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현진(55) 사귐의교회 목사는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를 꿈꾸며 전개되고 있는 한국 공동체운동의 선구자이자 이론가라 할 수 있다. 그가 집필한 ‘공동체 신학’(예영커뮤니케이션)은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에게 교과서나 마찬가지다. 예수원에서 공동체적 삶에 눈을 뜬 그는 8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을 다니며 15개 공동체를 탐방했다. 그리고 안정적인 고등학교 영어교사 자리를 내려놓은 뒤 신학교로 향했다.

“사실 신학교에선 신학만 가르치지 삶은 가르치지 않거든요. 사랑의 삶은 지도받지 못하고 신학만 공부하다보니 실제적인 사랑의 기술, 나눔이 없었던 겁니다. 여기에 목말랐던 12명의 신학교 동기들이 89년 총신대학원 기숙사에서 초대교회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낮엔 수업을 듣고 아침 저녁으로 성경공부와 침묵기도를 공동으로 했습니다.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중보기도의 시간도 가졌고요. 가난한 신학생들이지만 생활비를 아껴 신학교 근처 양지마을의 소년소녀가장을 도왔죠.”

소문은 금세 퍼졌고 ‘병아리’ 전도사는 동기와 선배, 교수 등 1000여명을 앉혀놓고 강의하는 강사가 돼 버렸다. 그리고 서울 온누리교회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90년 전국신학교공동체모임연합회를 조직했다. 이것은 한국공동체교회협의회의 모태가 됐다.

“96년까지 매년 공동체 세미나를 이끈 뒤 예수원의 모체인 미국 베다니공동체로 향했어요. 거기서 1년간 훈련을 받으며 교회의 본질과 삶을 나누는 삶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성령이 오셨을 때 진정한 사역공동체로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귀국 후 경기도 광명에서 교인이라고 해봐야 8명밖에 안 되는 작은 교회를 맡았다. 5년간 비좁고 냄새나는 마을회관 지하에서 예배를 드리다 지금은 유치원 건물을 빌려 성경적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교회 내 7가구는 유무상통(有無相通), 나눔을 통해 가족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우리 교인들은 서로 기댈 언덕이 있어요. 고달플 때 나눔과 섬김으로 같이할 지체들이 있기에 든든합니다. 사실 공동체로 산다는 게 인간 본성을 역행하는 일입니다. 나의 안락함과 야망을 죽여야 하거든요. 공동체의 핵심비결은 자기 죽음에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 교인들은 너무 피상적인 기독교에 익숙한 게 아닐까요.”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