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詩, 단어·시제 잘못 이해한 오역 많아요”

입력 2010-09-27 17:39


‘한국 문학의 영문 오역’ 논문 낸 한국외대 김욱동 교수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는 “시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그 무엇(Poetry is what gets lost in translation)”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학작품, 특히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과 의미의 함축성을 나타내는 차원에서 시의 올바른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는 말이다.

“시는 정확한 번역이 어렵고 일부러 의역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번역자들은 함부로 ‘오역’이란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에 명백한 오역이 이뤄진 경우를 찾아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학과의 김욱동 교수(62)가 ‘통번역학연구’ 9월호에 논문 ‘한국 문학의 영문 오역’을 게재했다.

시를 위주로 한 한국 문학작품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잘못 전달된 사례를 소개했다. 번역을 전공한 이래 머릿속에서 계속 염두에 두어 왔던 것을 3∼4개월 집중적으로 찾아냈다고 한다.

논문에 실린 사례 11건은 충격적이다. 널리 알려진 한용운의 ‘님의 침묵’ 서두가 영어로 어떻게 번역됐는지 살펴보자. 보스턴대와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뉴욕대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했던 한국 문학의 권위자 강용흘(1898∼1972) 선생의 번역이다.

“A lover is gone/O my lover gone away//as you loved me so I loved you” 원문은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갓슴니다”이지만, 뜬금없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였듯이 당신도 나를 사랑하였다”는 구절이 삽입됐다. 왜 원작에도 없는 구절이 새로 들어갔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오역은 뒷줄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더군다나 번역된 시의 제목은 ‘Meditation of the Lover(님의 명상)’이다.

미국 신학자이자 한국문학 번역가인 포이트라스는 한국어의 시제를 잘못 이해한 경우다. 그는 강은교의 ‘풀잎’에 나오는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나는 알고 있어요”라는 구절을 번역하며 미래 시제가 아닌 현재 시제를 사용해 “the wind that blows”라고 번역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어의 주어 생략 관행을 이해하지 못해 시의 화자를 바꿔놓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또한 이문열 작품 ‘시인’에 나오는 ‘백수(白首)’라는 단어의 뜻은 동양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뚜렷한 벼슬이나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 단어인데 번역자 티그는 초판번역본에 ‘grey-haired(흰 머리)’라고 번역했다. 김 교수는 이밖에도 정지용의 ‘비로봉’, 박두진의 ‘강’, 조지훈의 ‘고사’ 등이 잘못 번역된 사례를 찾아내 논문에 실었다.

김 교수는 “오역된 번역문들은 우리 문학에서 고전에 속하는 것들인데다 자타가 공인하는 권위자들이 작업한 것들이라 더욱 충격이다”고 말했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최근 문학작품들에까지 작업을 확대하면 더 많은 오류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또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는 어학 실력 뿐 아니라 언어·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문화 해독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며 “그래서 번역이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문학의 높은 수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 것은 분명히 번역 문제 탓도 있습니다. ‘번역의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2명이나 배출하지 않았습니까.”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