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오역 사례

입력 2010-09-27 17:36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의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라는 구절을 강용흘 선생은 “강도가 모든 빛을 빼앗아갔습니다/산에서는 푸른 빛을/계곡에서는 붉은 빛을”로 바꿔놓았다.

이런 오역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김 교수에 따르면 강 선생이 원문의 ‘적은 길’을 ‘적(賊)’으로 이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함께 번역한 미국인 아내 킬리 여사가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정지용의 시 ‘비로봉’ 마지막 구절 ‘흰 돌이/우놋다’는 ‘흰 들이/웃는다’가 돼 버렸다. 이는 번역자 키스터 신부가 민음사의 ‘정지용 전집’을 보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민음사의 책에 ‘흰 돌’이 ‘흰 들’로 잘못 나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우놋다’는 우리 고어로 ‘울다’라는 뜻인데도 번역자는 정반대의 뜻인 ‘웃는다’로 잘못 해석했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를 번역한 호주 외교관 부조 역시 우리 고어 지식이 빈약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원문과는 사뭇 다른 번역을 해놓았다. 현대어로 옮긴다면 “삶과 죽음의 길이/여기에 있음에 두려워 (머뭇거리며)/‘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갔는가” 정도의 뜻이 될 테지만 한 구절도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