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특임장관 “이젠 세상 눈으로 나를 봐… 90도 인사, 습관 됐어요”
입력 2010-09-27 16:36
대담=김의구 정치부장
한나라당에 이재오가 돌아왔다. 현 정권 최고 실세로 불리는 그가 이명박 대통령 곁으로 복귀했다. 2008년 총선에서 패한 뒤 야인처럼 지내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10개월 만에 귀국한 그는 국민권익위원장을 거쳐 7·28 재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곧이어 특임장관에 임명됐다.
그의 복귀 후 여권은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야당간 당정회의가 만들어지는 등 여야 관계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자신도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외로울 만큼 혼자서’ 하겠다던 선거운동, 90도 각도의 인사, 지하철 출퇴근…. 그를 만나 트레이드마크가 된 90도 인사와 정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추석연휴 직후인 지난 24일 새벽 출근길에 이뤄졌다. 부담스러워하는 그를 서울 구산동 자택으로 찾아가 새벽 5시40분 시작된 인터뷰는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을 거쳐 경복궁역까지 40여분, 정부 중앙청사 8층 집무실에서 다시 40분 동안 이어졌다.
그는 최근 변화를 총선 패배 후 자기반성에 따른 ‘정치인생 제2막의 출발’이라고 설명했다. 거침없던 평소 어법과 달리 현안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답변은 원론적이었고 때로 묵묵부답도 있었다. 실세에 따라붙는 공격들에 아직 수세적인 입장에 서 있는 걸로 이해됐다.
“아이구 새벽부터 집을 다 찾아오시고.” 인사를 교환하자마자 그는 갈색 가방을 한손에 들고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추석민심부터 화제에 올렸다. 추석 전날 고향인 경북 영양에 내려갔다가 올라왔다는 그는 추석 다음날 자전거로 지역구를 4시간 동안 돌며 비 피해가 없는지 챙겼다고 했다.
-민심이 어떻던가요.
“서민들이 좀 잘살게 해 달라는 것이죠. 서민들은 경기가 회복된 만큼 혜택이 안 돌아가요. 시골에서도 국정은 안정돼 가는 편인데 어려운 서민들이 잘살았으면 하는 게 제일 바라는 것이더군요.”
-90도 인사 콘셉트는 어디서 잡은 겁니까.
“선거 때 절실하잖아요. 한 표라도 얻으려면 자기를 낮춰야 하는데 말로 해서 안 되잖아요. 우리 국민들은 힘 있는 사람 좋아 안 하잖아요. 정말로 내 자세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팍 들었어요.”
-평이 좋던데. 당분간 90도 인사는 계속되겠네요.
“허허허. 당분간이 아니라 이제 생활습관이 됐습니다.”
-그동안 심경의 변화가 크게 있었던가 봅니다.
“2008년에 떨어졌잖아요. 반성을 많이 했죠. 그때만 해도 내 눈으로 세상을 보며 정치했는데 세상사람 눈으로 나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내 눈으로만 세상을 본 게 떨어진 큰 원인이었죠. 그런 반성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거지요. 국민권익위원장 하면서 숱하게 현장을 간 것도 세상눈으로 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재선·삼선하면서 내 위주로 생각했다는 것을 첫 좌절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겁니다. 과거대로라면 아직 자만하는 정치를 하고 있을 겁니다.”
-미국 생활은 어땠나요.
“투쟁으로 뭘 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치적 미래가 극히 불투명한 가운데 정치 2막을 준비하는 시기였습니다.”
총선 패배와 미국 생활을 이야기할 때 그는 표정이 어두워지기도 했다. 목소리는 나직했고 때로 갈라졌다.
-장관 취임 후 각계 인사를 만나고 있는데.
“배석자를 빼고도 100명 이상을 만났습니다. 대부분 이 정권이 성공해야 한국이 경제 위상에 걸맞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죠. 제일 바라는 게 정치안정이었습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 낙마를 막으려 민주당 박지원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던데.
“박 대표가 공개 안 할 걸 공개했는데 전화를 두 번 했습니다. 국정 공백이 생기면 안 되잖아요. 하지만 여론이 그냥 넘어가기 어렵더군요. 내가 표적 1호인데 포기하겠으니 딴 사람들 살리면 안 되겠느냐, 봐 달라고 했죠. 처음에는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반응이어서 2∼3일 있다가 다시 진지하게 전화했습니다. 농담 아니고 진짜라고. 결국 안 받아들이더군요.”
-김황식 총리 후보자 인준 전망은?
“자기 권력이나 권위를 이용해 재산을 증식하거나 탈세를 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주변에 의혹이 있는지는 몰라도. 특별히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박지원 대표가 김 후보자 내정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데 자주 통화합니까.
“해도 인사는 대외비지지요. 임명권자만 아는 거구요. 대야 관계라도 할 얘기가 있고 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차간에 금도를 지키는 가운데서 정치적 합의를 이뤄내야죠.”
-청문회 과정에서 대북 쌀 지원에 대해 찬성했는데.
“지난 정권 10년 동안 대북 지원을 우리가 비판했던 이유 중 하나는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지원해준 걸로 핵무기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반성 같은 것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있었던 거지요. 퍼주는 식으로는 남북 화해나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북한도 자기 구호대로 자력갱생할 수 있으려면 개혁·개방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중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해가 나서 어려우니까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자는 거지요. 정치적 관계와 인도적 관계는 구분해야죠. 다만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하다 보면 정치적 물꼬를 틀 수도 있습니다. 북한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죠. 핵무기만 만지작거리면 고립될 뿐입니다. 정말로 민족 화해를 생각한다면 상생해야 합니다. 상생은 원래 어원이 해원상생(解寃相生)입니다. 해원은 안 하고 상생만 하겠다면 상생이 안 됩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본회의장에서 만났는데 따로 한번 만날 의향은.
“사안이 생기면 만나야죠. 인사하기 위해 일부러 사안을 만든다는 건 부자연스럽잖아요. 같이 정치하다 보면 그런 사안이 오겠죠. 상견례는 한거죠. 오랜만에 만났는데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잖아요.”
“정말 반가웠느냐”고 반문했더니 “1년 넘게 못 봤으니까”란 애매한 답이 돌아왔다. 이어 “박 대표와 만나면 정치적으로 해석하잖아요. 특임장관으로서 당내 중진 정치인들을 만나 의견을 들을 사안이 있으면 만나는 것이지요”라고 부연했다. 박 전 대표 이야기가 이어지자 그는 화제를 지하철 출근 이야기로 돌렸다.
-개헌은 가능한가요.
“대통령께서 8·15 때 말씀한 건 선진국이 되려면 정치의 틀도 선진화돼야 한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겁니다. 정치 틀을 선진화하려면 지역 간 대결 구도와 정치 갈등을 극복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던졌지만 운반하는 것은 국회고 정당이죠.”
이야기가 원론을 맴돌아 “동력이 없으면 특임장관실이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의도가 있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야당에서 4대강 예산조정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내가 알기로 4대강 주변에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지역이 없습니다. 경남의 한 공구가 있지만 공사도 쉽고 예산 규모도 100억원밖에 안 됩니다. 낙동강 보를 줄인 걸 갖고 안동 사람들이 큰 걱정을 하더군요. 지역주민이나 지자체가 찬성하는데 정치적 이유로 반대하는 건 정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제 차기 대선 이야기 좀 하시죠.
“당에서 알아 하겠죠.”
-본인도 후보군에 들어가는데.
“아이구 하하하. 정부에 있는 사람이 그런 생각 하면 되겠어요?”
-차기 국가 지도자에 가장 우선시돼야 할 덕목은?
“그 정도로 해두죠. 더 말하면 밖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 나옵니다.”
배석했던 보좌진도 더 이상 안 나올 것이라고 지원했다. 이 장관은 “국가권력이 정의로 가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개개의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다는 모토로 정치를 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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