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代 할머니가 자기 상대 ‘姓 소송’…동성동본 배우자와 결혼하려 이름 바꿔 신고
입력 2010-09-26 21:27
동성동본 배우자와 ‘금지된 결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성(姓)을 바꿨던 할머니가 자기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내 40년 만에 원래 성을 되찾았다.
26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김모(71)씨는 1969년 동성동본인 경주 김씨 남성과 재혼을 하려다 당시 민법의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 발목을 잡혔다. 궁리 끝에 김씨는 예비 시어머니의 지인인 박모씨의 딸인 것처럼 출생신고를 해 가공의 인물인 박모씨로 성과 이름을 바꿔 이듬해 혼례를 올렸고, 이후 태어난 자녀 4명도 모두 허위의 호적에 등재했다. 다만 주민등록은 사는 데 불편이 없어 성명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김씨는 최근 나이가 들면서 상속 문제로 자식에게 누를 끼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 명의의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진짜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자녀들이 올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5월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바로잡기 위해 박씨 이름의 가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명의상 부모와 자신 사이에는 친생자 관계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냈다.
1심에서 피고가 원고와 동일인 또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각하 판결이 내려진 데 이어 2심에서도 항소 기각이 예상됐지만 공단 측은 기각을 하더라도 김씨의 이름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판결 이유에 적시해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달라고 재판부에 간곡히 요청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했지만 공단의 요청대로 판결문에 가공의 인물 박씨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적시한 뒤 “김씨 문제는 법원 선고가 아니라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덧붙여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덕분에 김씨는 지난 2월 법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 정정허가를 받아냈고 박씨 명의로 된 가짜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라 있던 자녀를 모두 진짜 가족관계등록부로 옮겨 40년 만에 꼬인 매듭을 풀 수 있었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