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17 여자축구 세계 제패] 불모지서 일군 ‘소녀축구 미러클’… 세계가 놀랐다
입력 2010-09-26 21:17
한국여자축구가 FIFA 주관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은 한마디로 ‘기적’이란 말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등록선수가 겨우 1450명에 불과한 불모지인 데다 출범한 지 20년밖에 안 된 일천한 역사 속에서 세계를 제패했기 때문이다.
8월말 현재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국내 여자축구팀은 실업팀 7개를 비롯해 초등학교 18개, 중학교 17개, 고등학교 16개, 대학교 6개, 유소년 클럽 1개 등 모두 65개 팀에 불과하다. 이 중 고교 16개 팀의 등록선수는 겨우 345명. 이들 중 선발된 21명이 세계정상에 오른 것이다.
결승에서 한국과 겨룬 일본만 하더라도 선수가 3만명이 넘고 이 중 18세 이하 선수만 해도 2만5000명에 달한다. 또 이번 대회서 유일하게 한국에 패배를 안겼던 독일은 등록 선수가 85만명을 넘고 성인팀만 5000개가 넘는다. 이 같은 저변의 차이는 한국의 성적이 ‘일회성’에 그칠 수 있음을 예고한다.
게다가 최근 한국 여자축구가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 축구의 뿌리가 되는 초등학교 팀이 올 들어 4개나 사라졌다. 여자 축구에 대한 일반인, 특히 학부모들의 인식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단적인 예다.
한국 여자 축구는 겨우 20년 전에 시작됐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여자축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대표팀이 급조됐다. 축구를 전문적으로 한 선수들이 없어 육상, 하키 등 타 종목에서 운동하던 선수들로 채워졌다. 사전 준비가 없이 출범한 만큼 북한 일본 중국 등에 뒤져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 팀에 10골씩 먹기도 했고 심지어 대만에 패하기도 했다.
명맥만 유지하던 여자축구가 전환기를 맞이한 것은 2001년 토토컵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하면서부터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일기 시작한 축구붐을 타고 초등학교 여자축구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3년 미국 여자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하면서 가능성을 엿보였고 그해 동아시아선수권대회서는 중국 일본 등을 제치고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도 여자축구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잉여금을 투자하기 시작했고, 2003년부터 여자 축구에도 유소년 상비군제를 도입해 연령별 대표를 선발해 본격적인 조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의 선수 양성 시스템으로는 지속적인 성과를 보장받기는 어렵다. 우선 전문선수 양성 위주의 학원스포츠가 변해야 하고 국내 프로축구 K리그도 유소년 여자팀을 운영하는 방안도 찾아봐야 한다.
서완석 부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