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주춤·환율 발목…한국경제 ‘역풍’

입력 2010-09-26 21:24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나며 놀라운 성장세를 일궈낸 원동력인 환율과 수출이 거꾸로 발목을 잡을 태세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불확실성에 빠져 있으면서 반도체·자동차 등 우리 주력산업 성장세는 눈에 띄게 주춤하고 있다. 고공비행하던 경기지표는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중국·일본의 환율전쟁이 무역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우리 경제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있다.

◇‘엔진’이 식는다=26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의 7월 산업생산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7.6%와 25.9%에 그쳤다. 1분기 증가율 59.3%, 51.0%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7월 70.8%에 이르렀던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지난달 59.6%로 떨어졌고, 자동차 수출 증가율은 같은 기간 47.7%에서 27.5%로 낮아졌다.

특히 반도체 수출의 57%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하락세는 4분기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이후 하락세로 돌아선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전통적 성수기인 4분기에도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제품에 따라 6∼22%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2분기 이후 수요부진에 따른 공급과잉 조짐을 보이면서 가격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력산업의 생산 증가율이나 수출 증가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 식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기준 43.4%에 이른다. 더욱이 수출 여건은 갈수록 더 나빠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경기 둔화, 유럽 재정위기 우려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중국 경기도 상반기만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기지표도 서서히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연구위원은 “4분기 설비투자 증가율은 상반기보다 매우 낮은 8.8%에 그칠 것이다. 총수출 증가율도 10.8%로 낮아질 것”이라며 “경제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대 변수로 떠오른 환율=상반기 수출증가의 지원군 이었던 환율마저 걸림돌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격해지는 환율전쟁이 수출 감소세에 가속도를 붙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미국·중국·일본 등 강대국들이 자국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맞서는 상황에서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우리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155.20원을 기록해 지난 5월 18일 이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원·달러 환율의 3개월 전망치를 기존 1150원에서 1100원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미국이 추가 부양책을 시사해 달러화 약세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데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중국 위안화의 절상을 압박하는 점도 원화 강세를 부추길 수 있는 요인이다. 중국도 미국의 선거를 의식해 위안화 절상을 용인할 가능성이 크다. 달러화 약세와 위안화 강세는 원화 강세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수출에서 내수로 정책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각국의 경기부양 정책에 따른 반사이익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은 내수경기 활성화와 성장잠재력 확충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