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 금리 한국판 ‘그린스펀의 수수께끼’
입력 2010-09-26 18:31
은행들이 정기예금 금리를 잇따라 내리고 있다. 채권금리가 추락(채권 가치 급등)하면서 시장금리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연 2.25%로 올린 데 이어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도 시장금리는 되레 하락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판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채권을 중심으로 시장금리 하락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인 은행 정기예금 금리도 추가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24일 연 3.86%로 거래를 마쳤다. 직전 거래일 대비 0.08% 포인트 하락했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7월 9일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연 4.52%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두 달 만에 0.63% 포인트가 빠졌다. 4%대였던 금리는 어느새 3%까지 내려앉았다.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인상한 데다 추가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채권금리는 거꾸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한국판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라고 한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는 기준금리를 올리는데도 시장금리, 특히 장기금리가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2004년 6월부터 다음 해 12월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정책금리를 연 1.00%에서 연 4.25%까지 3.25% 포인트나 올렸지만 같은 기간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4.7%에서 연 4.4%까지 떨어졌다. 미국 국채에 글로벌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한국판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도 우리 국고채에 돈이 쏠리면서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채권금리가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또 외국인 투자자의 채권 순매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외국인이 우리 채권을 사들이면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환차익을 거둘 수 있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원은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의 환율전쟁으로 원화 가치가 뛰자 국내 채권시장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몰려들고 있다. 지난 8일 3.61%였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4일 3.50%까지 추락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당분간 하락세를 보이며 사상 최저점인 연 3.25% 하향 돌파를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예금 금리도 추락=시중은행들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지난 9일 이후 2주 연속 정기예금 금리를 내렸다. 27일에도 추가 금리인하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채권금리가 추석 연휴 이후 개장한 24일 급락해 이를 반영, 예금금리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시장금리 하락을 반영해 한두 차례 예금금리를 내렸다. 예금금리를 결정하는 기준인 채권금리가 급락하면서 조달비용이 높아지다 보니 예금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반면 은행의 대출금리는 최근 1개월간 오르거나 변동이 없었다. 체감경기 부진 등으로 개인이나 중소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현금이 풍부한 대기업도 은행을 외면하면서 대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정기 예금금리는 추가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단기 수신금리가 내려가 예대금리차가 벌어진다고 해도 소폭에 불과해 은행 수익 개선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