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17 여자축구 세계 제패] 취임 1년여만에 큰일 해낸 ‘아빠 리더십’
입력 2010-09-26 18:16
최덕주(50) U-17 대표팀 감독은 ‘아버지 리더십’으로 한국 축구 사상 처음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대회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최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실수로 골을 내주거나 패스 미스를 연발할 때에도 고함 한번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축구는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마음 여린 소녀들을 항상 자식같이 푸근하게 감싸 안았다.
이런 온화한 리더십 덕분이었을까. 머나먼 카리브해 섬나라에서 펼쳐진 세계 무대에서 태극 소녀들은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히 기량을 발휘했다. 또 감독의 눈치를 살피기보다 서로 마음을 교감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고, 경기마다 끈끈한 팀플레이를 선보였다. 최 감독은 “아이들에게 윽박지르고 체벌을 가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고 감독 눈치 보느라 주눅이 들면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없다”면서 “이기려고 임기응변에 강한 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즐기면서 기본기를 착실히 다지는 선수로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리더십’은 연장 접전 후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빛을 발했다. 마음 여린 소녀들이 피를 말리는 승부차기에서 중압감에 자칫 실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 있게 차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다독였다.
최 감독은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한국 유소년팀을 맡았다. 하지만 이 같은 아버지 리더십으로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16세 이하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라이벌 일본과 강호 북한을 연달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활약한 주포 여민지 등은 당시 대회 우승 멤버다. 최 감독이 지난해부터 이미 대표팀을 세계 최정상급으로 조련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감독은 사상 첫 FIFA 주관 대회 우승의 공도 함께 뛴 선수들에게 돌렸다. 최 감독은 “선수들이 무척 잘해줘서 할 수 있었다”며 “다른 감독이라도 이 선수들과 함께했더라면 우승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겸손해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