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땅콩버터와 MDG
입력 2010-09-26 18:48
당신이 난민촌의 어린이들에게 나눠줄 땅콩버터를 골라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하나는 난민촌 지역 농부들이 재배한 땅콩으로 난민촌 사람들이 만들어 파는 땅콩버터. 또 하나는 프랑스 수입산이다. 둘 다 냉장도 조리도 필요 없다. 그냥 뚜껑을 따서 떠먹으면 된다. 영양 성분도 비슷하다.
차이는 단 하나다. 난민촌 땅콩버터는 유엔이 실시한 엄격한 위생 심사에서 몇 가지 사소한 지적을 받고 납품 대상에서 탈락한 적이 있다는 것. 프랑스산 땅콩버터는 긴급구호용으로 개발됐고 위생과 영양이 검증된 상품이다. 어느 걸 선택하겠는가? 중남미 빈국 아이티에는 ‘메디카 맘바’라는 긴급구호용 땅콩버터가 있었다. 3년 전 아이티의 토종 식품업체 ‘메디 앤드 푸즈 포 키즈’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것이다.
지난 1월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국제구호단체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메디카 맘바를 외면했다. 유엔의 위생 심사에서 탈락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프랑스 식품업체 누트리세트에서 만든 ‘플럼피 너트’를 선택했다. 플럼피 너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긴급구호 식품이다. 아이티에 플럼피 너트가 쏟아져 들어왔다. 구호단체들은 열심히 플럼피 너트를 나눠주었다. 결국 메디카 맘바를 만들던 농부와 주민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지진 피해를 당한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자선단체들도 할 말은 있다. 대부분의 구호단체들은 현지 물품 우선 구입을 원칙으로 한다. 문제는 재난이 벌어진 나라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구호단체들의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구호단체들이 열심히 활동할수록 수입품이 넘쳐나고 현지 경제는 무너지는 일이 반복된다. 2005년 세계 정상들은 ‘새천년 개발 목표(MDG·Millenium Developement Goals)’를 선언했다. 10년 안에 지구상에서 가난과 질병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목표다. 유엔은 MDG를 위해 구호식품의 영양과 위생 기준을 정했다. 그 결과, 플럼피 너트의 매출은 1년 만에 3배가 늘었다.
지난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 세계 140여개국 정상들이 다시 모였다. MDG를 위해 400억 달러를 모으기로 했다. 토종 메디카 맘바를 만들어 돈 벌던 사람들이 수입산 플럼피 너트를 얻어먹게 만드는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논의하지 못했다. “지원금만 모은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며 구조적 모순의 해결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고는 한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