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사회인이 되는 C군에게

입력 2010-09-26 19:07


C군, 삶의 전쟁터인 사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소식 들었네. 모두들 어렵다고 하는 시대에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축하받아 마땅하네. 흔히들 직장생활은 ‘일’을 배우는 곳인 동시에 ‘사람’을 배우는 곳이라고 하지. 조직생활을 먼저 해 본 선배로서 조언을 좀 해도 되겠나? 하루 아침에 준비된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시행착오를 거친 체험신앙과도 같은 것이니 좋은 선물로 받아주게나.

얼마 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연출한 감독께 인터뷰를 청할 일이 있었네. 질문지를 미리 주면 준비하겠다고 하시는 거야. 막연히 일단 만나서 어떻게 해 보려고 하다가 부랴부랴 밤을 새워 인터뷰 질문들을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드렸지. 그리고 다음 날 만났는데 질문 문항마다 빼곡히 적어와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성실하고 겸손하게 많은 답변을 해 주시더군. 인터뷰이의 철저한 준비에 인터뷰어는 많이 부끄럽고 감사했지.

역시 최고는 어쩌다 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남과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어. 외부 특강을 의뢰받을 때 상대기관의 요청에 따라 마음자세가 달라졌던 나와 비교가 되더군. “그냥 알아서 재미있게만 해 주세요!” 하는 식의 요청에는 나 자신도 기존의 매뉴얼로 적당히 임하였지. 반대로 특강 요청의 목적을 정확히 밝히고, 수강 대상에 대한 성별, 직업별, 연령대, 그리고 특이사항까지 미리 고지해 주면 강사로서 좀 더 세밀한 준비, 내실 있는 내용, 적확한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더라고. ‘누울 자리보고 발 뻗는다’는 우리 속담이 틀리지 않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야. 간혹 회의의 주제나 내용에 대한 충분한 안내 없이 참석해 보면 안다는 식으로 진행될 때가 있지. 회의의 목적과 연관되는 세부사항이나 추진방향, 현재까지의 상황, 사례, 참고자료 등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공지하고 회의 참석자들이 숙지된 상태에서 회의가 진행된다면 불필요한 논의를 반복함으로써 생기는 시간과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는데도 말이야.

물론 창의적인 아이디어 회의나 간담회 성격이라면 사전 정보가 필요 없을 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아이디어 회의처럼 즉흥적으로 진행할 때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해. 나 자신도 핵심 없는 내용만을 나열하거나 중언부언하는 경우가 있었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일 때 그 일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일관성과 공정성을 갖게 되고 무엇보다 효율성이 높을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니겠나.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을 자네에게 추천하고 싶네. 직장생활에 도움이 될 걸세.

요즘 정치권이든, 사회든 모두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소통의 부재는 결국 준비와 진정성이 부족한 데서 오는 문제가 아닐까. 우리의 생각을 도식화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연습 못지않게 일과 사랑에도 진정성이 가득한 열정을 담아보세. 직장이라는 광야에서 단련될 자네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하며 아자아자 파이팅!

김애옥(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