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진작가 유키 오노데라 작품전 ‘눈길’… 같은 카메라에 담긴 전혀 다른 세상

입력 2010-09-26 17:44


“이렇게 다양한 사진이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서울 방이동 사진전문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 출신 사진작가 유키 오노데라(본명 오노데라 유키·48) 전시를 찾는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전시를 관람한 사진작가들도 “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실험적인 것이 놀랍다”고 입을 모은다. 유키의 작업은 어느 한 가지 스타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1991년 일본의 ‘사진신세기상’ 수상으로 데뷔한 유키는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한 배경 때문인지 기존 사진 문법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면서도 기발한 착상이 돋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12개 시리즈 7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헌옷의 초상’ 연작이다.

‘헌옷의 초상’은 93년 프랑스의 사진설치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개인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당시 볼탕스키는 작품에 쓰였던 헌옷을 관객들에게 팔았고 그 중 일부를 유키가 구입해 자신의 작품에 차용했다. 파리 몽마르트의 작업실에서 보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헌옷에 생명을 불어넣은 사진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역광을 이용해 인물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트랜스베스트(Transvest)’ 연작은 언뜻 보면 실제 인물사진 같지만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낸 인간의 형상에 가로등이나 역사적 건축물의 사진을 몽타주 방식으로 채워넣은 작업이다. 사람의 얼굴을 흐릿하게 찍은 듯한 ‘P.N.I’ 시리즈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대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인식하는 습관을 꼬집는다.

암실에서 두 대의 카메라를 서로 마주보게 한 후 동시에 셔터를 눌러 촬영한 ‘카메라’는 사진과 카메라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고, 작가가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몰래 찍은 사람들 사진 위에 여러 가지 문양으로 오려낸 종이를 올려놓은 ‘11번째 손가락’은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손가락과 카메라의 의미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정물사진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물 사진 속 거울의 각도에 따라 비치는 풍경들이 각기 다른 ‘12 스피드’와 2개의 렌즈가 달려 동시에 2장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입체카메라(스테레오카메라)로 스웨덴에 있는 로마 섬과 스페인의 로마시를 한 필름에 담아낸 ‘로마, 로마’ 시리즈도 재기넘치는 발상에 감탄하게 되는 작품들이다.

과감한 프레이밍, 극단적인 클로즈업, 포토그램과 콜라주 등을 이용해 사진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는 작가의 전시는 독립된 미술 장르로 자리잡은 현대사진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살펴볼 수 있다. 미술관이 2008년부터 올해까지 새로 소장한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도 함께 진행된다. 김준 노순택 데비한 배찬효 심문섭 원성원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2월 4일까지 전시(02-418-1315).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