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총회는 남성들의 전유물인가. 까만 양복들의 축제인가

입력 2010-09-24 16:45

[미션라이프 ] “까만 양복들만의 잔치로군요!”

지난 15일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제95회 총회가 진행 중이던 강원도 원주 행구동 영강교회에서 만난 캐나다연합교회(WCC) 전 총회장 로이스 윌슨(83·여) 목사는 총회에 대한 인상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참여가 너무나 적다는 뜻이다. 그나마 양성평등 문제에 있어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 중 하나라는 기장 총회임에도 회의장 곳곳은 ‘까만 양복’들로 넘쳐났다. 간간히 눈에 띄는 여성들은 총회 실무자들이거나 영강교회의 자원봉사 안내자들, 또는 윌슨 목사와 같은 해외 참석자들이었다.

9월은 교단 총회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시기다. 올해 각 교단 총회에서 여성 참여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이를 높이기 위한 노력 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봤다.

총회에서 선거와 발언권을 가지는 총대 중 여성이 있는 교단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기장,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기독교대한복음교회(복음교회) 등 정도다.

총대는 대부분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기 때문에 여성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예장 합동, 고신, 개혁 등은 여성 총대가 존재할 수 없다. 또 안수를 인정하지만 아직 시행에 들어가지 않은 예장 백석도 마찬가지다. 각각 2004년과 2005년부터 여성 안수가 시작된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 기성은 ‘10년차 이상’이라는 노회원 자격에 부합하는 여성 총대가 나오려면 4~5년을 기다려야 한다. 다만 기성에서는 해외 노회 소속 여성 목사 한 명이 예외적으로 총대 자격을 갖고 있다.

문제는 여성 총대가 있는 교단에서도 그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 기하성과 복음교회가 그나마 10% 이상 비율을 보이고 있고 그 외에는 한 자리수 또는 그 이하였다. 기장에서는 매년 여성 총대가 15~16명으로 전체의 2%가 조금 넘는 수준이고 예장 통합은 지난해의 12명보다도 줄어든 9명의 여성 총대가 이번 총회에 참석했다.

그중 이번 기장 총회에서 여성 총대 비율을 의무화 안건이 통과된 것이 눈에 띈다. 이 역시 순탄치는 않았다. 총회 산하 양성평등위원회가 여성 총대 비율을 전체의 5%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으로 ‘노회원이 20명 이상인 노회에서 목사·장로 1명씩의 여성 총대를 선출하도록’ 하는 안을 제안했지만 헌의 과정에서 ‘30명 이상인 노회’로 내용이 일부 수정됐던 것이다. 이에 총회 기간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여교역자협의회, 한신여동문회 등이 나서서 원안대로 환원시킬 것을 총대들에게 호소했고 총회 마지막 날인 16일 오전 극적으로 원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이밖에 기장 총회에서는 ‘노회별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포함한 양성평등 교육 실시’, ‘한국기독교장로회 양성평등선언서를 총회 선언서로 채택해 줄 것’을 담은 헌의안도 통과돼 교회 내 양성평등을 이루는 초석이 놓여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등이 여성 참여 비율을 50%로 정해두고 있으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지난해 회원 교회에 ‘여성 참여 비율을 30% 이상으로 할 것’을 권고한 것에 비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 8일 예장 통합 총회에서도 평신도지도위원회가 “노회 당 여성 총대를 1명 이상 선출을 권장해 달라”고 청원한 안이 통과됐다. 이 때도 총대들의 거부반응이 있었다. 강제성이 없는 ‘권장’ 사항이라는 점이 누차 강조된 뒤에야 겨우 허락이 떨어졌다.

올해 1년간 교단 총회의 여성 참여 문제를 놓고 모니터링을 진행 중에 있는 교단총회공동대책위원회(이하 총회대책위)는 또 다른 관점의 비판도 내놓는다. 예장 통합과 기장 총회 전 일정을 참관한 김애희 실장은 “현재의 여성 총대들의 역할이 미미하다”고 전한다. 특히 예장 통합 총회에서는 4일간 회의 중 여성 총대 발언이 3차례에 불과했고, 그나마 교회 내 여성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음달에 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 총무에 취임하는 이문숙 목사는 “총회 여성 참여도가 낮으면 교회 내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수 없고, 수직적 체계 강화, 소통 부재 문제가 심화된다”고 우려했다. 또 이는 한국 교회 전체가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 청년 등 다음 세대 성도 감소의 중대한 이유 중 하나라고도 주장했다.

그럼에도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기장 총회처럼 적은 수치에서부터 여성 총대 할당제를 만들어가는 것 정도다. 따라서 각 교단 내 여성들부터 양성평등 상황에 대해 자각할 필요가 있다. 총회대책위는 교회 내 양성평등 의식 고취를 위해 교단 연합으로 양성평등 교육과 실태조사, 헌의안 청원 등의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한편 여성 안수 문제와 별도로 대안을 찾을 필요성도 제기된다. 예장 고신 소속 목회자인 총회대책위 오세택 공동대표는 “일단 목사나 장로가 아닌 평신도 총대를 인정하는 문제를 단계적 접근법으로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일례로 복음교회는 전국여선교회연합회가 집사 권사를 포함해 10명의 여성 총대를 추천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오 대표는 “(여성 참여 문제는) 결국 여성 안수와 같이 가는 문제”라고 전제하며 “보수 교단들이 여성 안수 문제에 대해 관습과 남성우월주의를 떠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교회에서 여성의 의견을 반영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여성이 한 자리라도 더 차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소외된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기득권을 버릴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일갈했다. 또 “예수님의 복음은 철저히 약자, 못 가진 자, 배제된 자를 위한 것이었다”면서 “예수를 믿는다면서 이들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각성이 일어나야만 여성 참여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황세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