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족이 음모를” 내면의 공포 그려… 위화 소설집 ‘4월3일 사건’

입력 2010-09-24 17:34


중국 문단의 제3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위화(50·사진)는 국내에 ‘가랑비 속의 외침’ ‘허삼관매혈기’ 등 장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젊은 시절에는 실험성 강한 소설을 발표한 선봉파 작가였다. 그만큼 위화는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다. 그가 선정한 4개의 중편이 묶인 ‘4월3일 사건’은 우리 삶의 근원에 닿고자 한 청년 위화의 전위성을 살필 수 있는 작품집이다.

위화는 청년 시절에 주로 인간 내면의 공포와 억압, 그리고 인간 사회를 둘러싼 폭력과 죽음에 관한 주제에 천착했다. 그 이유에 대해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는 ‘우리 사는 곳에 이런 것들이 없는지 한번 찾아보라’라거나 ‘왜 이렇게 많은 죽음과 폭력적인 상황들이 삶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한 바 있다.

표제작은 공포와 압박에 시달리는 한 소년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소년은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들, 친구, 이웃, 심지어 부모까지도 자신과 관련된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소년이 생각할 때 이 음모가 실행되는 날은 바로 4월 3일이다. “그는 시간을 모르는 것처럼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일, 4월3일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머릿속이 유난히 맑았다. 그럼에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80쪽)

소년은 이 음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화물열차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과연 그 음모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몽환적 풍경과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묘사, 무언가 표현하려 한 것 같지만 대상 자체도 명확하지 않은 서사라는 측면에서 카프카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여름 태풍’은 거대한 자연재해와 그에 맞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지진이 날 거라는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은 집에서 나와 공터나 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짓는다. 그러나 정작 마을에 찾아온 것은 장마였다. 온 마을이 축축하게 젖어들고, 학교 북쪽 건물에서 지진관측기를 지키는 소년 바이수는 관측기가 지진의 어떠한 징후도 감지하지 못했음을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보고를 받은 현 주임이 지진이 나지 않을 거라고 공표하고 얼마 뒤 바로 지진이 마을을 뒤흔든다. 장마와 지진에 대한 공포에 사람들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 그늘 아래 눕히자 풀숲에서 떼를 지어 날아온 모기가 삽시간에 그의 몸을 점거했다. 불어오른 그의 몸에 무수한 반점이 생겼다. 누군가가 사체에 다가갔다. 모기떼가 잽싸게 사체를 떠나 어지럽게 날아다녔다.”(146쪽)

작품집은 실험정신이 가득한 작품, 전통 서사를 추구한 작품, 알레고리를 밑바닥에 깔고 있는 작품까지, 색과 맛이 다른 내용물을 골고루 담고 있어 위화의 색다른 풍모를 엿볼 수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