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17 월드컵 우승-득점왕-MVP 모두 내 품에… 부상도 막을 수 없는 ‘소녀의 꿈’
입력 2010-09-23 20:40
오른쪽 무릎은 반창고투성이였다. 허벅지는 압박 붕대로 칭칭 감은 상태였다. 다리를 절 정도로 몸은 말이 아니었다. 2년 전 중학교 3학년 시절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에다 7월 똑같은 부위를 다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녀는 달리고 또 달렸다. ‘세계무대에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말이다. 그리고 사상 첫 결승 진출 후 전 세계에 외쳤다. “사상 첫 우승컵을 차지하고 내 이름 석 자를 세계 축구사에 새기겠다.”
부상 투혼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향해 달리는 17세 태극소녀 여민지 얘기다.
여민지는 22일(한국시간) 트리니다드토바고 코우바의 아토 볼던 경기장에서 열린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 4강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려 한국축구 사상 최초 FIFA 주관대회 결승 진출 달성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한국은 여민지의 활약으로 스페인에 2대 1 역전승을 거두고 최소한 준우승을 확보해 지난달 U-20 여자 대표팀이 U-20 월드컵에서 거뒀던 3위를 뛰어넘어 역대 FIFA 주관대회 최고 성적도 예약했다. 한국은 26일 오전 7시 영원한 라이벌 일본과 대망의 우승컵을 놓고 격돌한다.
여민지는 이날 골로 우승컵-득점상(골든부트)-최우수선수상(골든볼)을 휩쓰는 트리플 크라운에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섰다. 한국축구 선수 중 그 누구도 우승컵, 골든부트, 골든볼 중 하나라도 거머쥐지 못했지만 여민지는 그 모두를 차지하는 신화에 도전하는 것이다.
꿈 많은 여고생 여민지에게는 시련이 많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성장통 때문에 3개월 동안 양 무릎에 깁스를 했고. 중학교 3학년 땐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수술까지 했다. 간신히 재활에 성공했지만 부상의 불운은 다시 찾아왔다.
월드컵 출전을 한달 여 앞둔 지난 7월 강원도립대와 연습 경기를 하다 통증을 느꼈다.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던 무릎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이전까지 아파도 내색하지 않던 여고생은 처음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병원에서 ‘이런 몸으로 경기를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만류를 했다. 그러나 여민지는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강해졌다. 불굴의 의지로 대회 출전을 강행했고, 결국 자신이 바라던 세계 정상도 눈앞에 뒀다.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적어놓은 ‘성실함+꾸준함=성공’이라는 신념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가 새 역사를 쓰기까지 이제 결승전 단 한 경기만 남았다.
김준동 기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