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대통령 전용기
입력 2010-09-23 17:24
영화 ‘에어포스 원’은 대통령 전용기를 공중 납치한 테러리스트들과 미국 대통령 제임스 마셜(해리슨 포드 분)과의 액션을 다룬 영화다. 러시아 언론인으로 위장한 발레라(게리 올드만 분)가 이끄는 테러리스트들은 교도소에 수감된 독재자 라덱 장군을 석방시키기 위해 마셜 대통령과 가족, 미국 고위 관리들이 탑승한 에어포스 원을 하이재킹한다.
마셜 대통령은 비상 장비를 이용한 탈출을 마다하고 전용기에 남아 테러리스트들과 격투를 벌인다. 대부분의 탑승객을 낙하산으로 탈출시킨 그는 추락 직전의 전용기에서 자일로 연결된 군 수송기로 옮겨 타는 곡예 탈출에 성공한다. 미국은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한다는 할리우드식의 천편일률적인 설정이 식상하지만 배우들의 열연은 볼 만하다.
극비리 방문한 자이툰부대
2004년 12월 8일 총리실 출입기자들이 청와대로부터 중대발표가 있으니 청와대 춘추관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취재하러 출국했을 때였다. ‘혹시 해외에서 노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청와대 관계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대통령님께서 이라크 아르빌에 있는 자이툰부대를 방문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의 안전을 위해 엠바고(일정 시간까지의 보도 자제)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노 대통령은 쿠웨이트의 알 무바라크 공군기지에 도착해 대기하던 우리 공군기를 타고 아르빌로 이동, 2시간 동안 자이툰부대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노 대통령을 보고 장병들은 크게 감동했단다. 그해 11월 아르빌을 방문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깜짝 구상을 접한 합동참모본부 국가안전보장회의 등은 12월 초 준비요원들을 극비리에 파견해 쿠웨이트 관계자들과 항로조정, 경호준비 등의 세부절차를 논의했다.
‘동방계획’으로 알려진 노 대통령의 자이툰부대 방문은 극비리에 추진됐다. 우리나라가 평화재건업무를 맡는 부대를 파견했지만 이라크 무장 세력에 의한 테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일부 백악관 경호원들 모르게 바그다드행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백악관은 “계획이 유출되면 도중에라도 회항하겠다”고 비밀유지를 당부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적국의 심장부에 부시 대통령이 들어가는 만큼 어느 때보다도 치밀한 작전을 세웠을 것이다.
대통령 전용기는 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의 최고위급 관리들이 탑승하기 때문에 운항정보, 비행기 제원 등 일체의 사항을 비밀로 하고 있단다. 중앙 일간지에 대통령 전용기의 안팎을 스케치한 기사가 실려 해당 항공사 임원이 청와대로 불려가 깐깐하게 조사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다. 군사정권 시절이었다면 그 임원은 안가로 끌려가 뼈도 추리지 못할 정도로 치도곤을 당했으리라.
운항정보 노출 다신 없어야
국가기밀인 대통령 전용기의 운항정보가 얼마 전 노출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6월 26, 27일 캐나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과 29일 파나마, 31일 멕시코 방문 때 대통령 전용기의 송수신 내용, 좌표 등이 실시간으로 공개된 것이다. 대통령실 경호처는 노출된 송수신 정보 10건의 내용이 부정확하고, 좌표가 정확하더라도 대통령 전용기는 정보 송수신 당시 있던 하늘에서 최대 수백㎞ 이상을 이동하기 때문에 위해 가능성이 없다고 해명했다. 대통령 전용기의 운항정보를 암호화할 것이라는 대안도 내놨다.
하지만 대통령 전용기의 항적이 공개되는 것은 적기의 요격 가능성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호처는 뒤늦게 운항정보를 암호화한 것처럼 또 다른 개선점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국민은 국가안위에 관한 한 한 치의 허점도 없기를 기대한다.
염성덕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