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최정욱] 조선산업에 거는 기대
입력 2010-09-19 21:41
해전사가들은 조선이 임진왜란에서 승리한 요인으로 혁신적 전함을 꼽는다. 조선 수군에는 이순신 장군이 각종 병서와 교범에 기초해 설계한 판옥선과 거북선이 있었다. 판옥선은 방어지붕과 지휘탑을 지지하는 높고 두터운 목조 현측을 가진 직사각형 배로, 일본군의 조총보다 사거리가 훨씬 긴 대포들을 촘촘히 갖출 수 있었다.
거북선은 더 가공할 만한 선박이었다. 1592년 안골포 해전에서 거북선은 들이받기와 대포 공격을 조합,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바다에 뜬 성곽으로 지어진 초대형 선박을 단숨에 부숴놓았다. 해전사가들은 “철갑을 두른 축소된 판옥선이라는 발상을 통해 이순신은 당시로선 가장 강력한 수군 무기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한다(이에인 딕키 외, ‘해전의 모든 것’).
1971년 조선소 설립을 추진하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들고 영국에 가 돈을 빌리고 그리스에서 선박을 수주했다. 있지도 않은 조선소가 미리 수주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한국은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만들었다. 그 기술이 한국에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 조선산업은 이후 발전을 거듭, 2000년부터는 수주량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현재 한국은 세계 10대 조선소 중 7곳이 있고, 2008∼2009년 선박이 수출품목 1위를 차지한 조선 강국이다.
이런 한국 조선산업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수주량과 수주잔량에서 중국에 밀리더니 최근에는 수주액마저 중국에 역전된 것.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올 1∼8월 한국의 선박 수주액은 총 150억2446만 달러로, 중국(153억784만 달러)에 뒤졌다. 기술력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가 많아 늘 앞서왔던 한국으로서는 자존심을 구긴 셈이다.
이 때문일까.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제7회 ‘조선의 날’ 행사는 예년과 달리 썰렁한 모습이었다. 조선업계 최고경영자도 오병욱 한국조선협회장(현대중공업 사장)과 홍경진 STX조선해양 사장만 보였다.
다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전문가들은 환경규제 강화에 맞춰 획기적 수준의 탄소절감이 가능한 선박 개발과 조선소의 디지털화를 통한 효율제고 및 비용절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소들이 일부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한국의 세계 조선산업 1위 탈환을 기대해본다.
최정욱 산업부 차장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