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3인의 추석] “고향땅에 묻어달라고 하시던 외할머니와 약속 못지켜 죄송”
입력 2010-09-19 21:38
2006년 탈북해 서울 양천구의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이열미(69·여)씨는 “고향에 묻어달라던 외할머니의 부탁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한”이라고 말했다. 함북 청진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이씨는 외할머니가 2001년 돌아가시자 탈북을 결심했다.
한국에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47년 여동생 은숙(66)씨를 등에 업고 내려온 부모가 있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이씨는 생이별한 부모를 찾아 두만강을 건넜다. 국정원 조사와 하나원 교육을 마친 이씨는 가장 먼저 부모와 동생을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어머니의 사촌동생을 만나 부모가 한국에서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더 낳고 살다가 10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씨는 19일 “행복하게 살고 있을 가족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찾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석 달 안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조선방송위원회 라디오1부장이던 이모부의 도움으로 이씨는 평양사범전문학교를 나와 20여년을 평양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그러나 78년 이모부가 사상범으로 검거되면서 이씨의 삶은 무너졌다. 결혼 후 자식이 없어 눈치를 주던 남편의 가족들은 이모부의 검거를 빌미로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 후 이씨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함북 청진으로 추방됐다.
추방지에서 이씨는 평생 자신을 길러 준 외할머니를 잃었다. 외할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에도 고향을 잊지 못했다.
“내가 죽으면 꼭 고향인 함남 북청에 묻어다오.” 하지만 청진을 벗어날 수 없었던 이씨는 결국 외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지 못한 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다.
이씨는 지난 17일 서울 양천구가 주최한 ‘북한이탈주민 중추절 합동차례’에 다녀왔다. 임진각 망배단에 차려진 차례상 앞에서 돌아갈 수 없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이씨는 하염없이 울었다.
이씨는 “통일을 바라는 이유는 딱 한 가지”라며 “외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