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의술’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피로회복제로 속여 돈벌이

입력 2010-09-19 21:42


서울 강남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30대 여성 A씨는 최근까지 해뜨기가 무섭게 여종업원들과 근처 한 성형외과에 ‘우유’를 먹으러 갔다. 우유는 수면마취제로 사용되는 프로포폴을 일컫는 은어다. 다른 주사제와 달리 우윳빛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팝스타 마이클 잭슨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바로 프로포폴이었다.

A씨는 2003년 성형수술을 해준 병원장에게 프로포폴을 ‘피로회복제’로 권유받고 처음 맞았다. 이후 7년 동안 오전엔 병원에서 프로포폴에 취해 잠자고 저녁엔 약값을 벌기 위해 일하는 중독자가 됐다.

프로포폴은 마취전문의가 다뤄야 하는 전문의약품이다. 환각과 진정 효과가 있고 히로뽕처럼 중독성도 강하다. A씨는 “지난해 이 약에 중독됐던 후배가 숨진 걸 보고도 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병원을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프로포폴을 마구잡이로 놔주고 거액을 챙긴 서울 강남 지역 성형외과·산부인과 의사들이 대거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김희준)는 간호조무사 등 무자격자를 시켜 프로포폴을 환자에게 투여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성형외과 원장 우모씨 등 병원장 2명을 구속기소하고, 최모씨 등 의사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우씨는 2006년부터, 다른 병원장 박모씨는 지난해 4월부터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각각 1081차례, 404차례 투여하고 5억여원, 1억여원의 수익을 챙긴 혐의다. 최씨 등 성형외과나 산부인과 의사 5명도 간호조무사를 시켜 프로포폴을 각각 400∼1400여 차례 투여하고 5000만∼3억7000여만원의 수익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프로포폴을 ‘비타민 주사’ ‘피로회복제’ 등으로 광고했고 중독자들은 소문을 듣고 몰려왔다.

프로포폴은 병당 공급가격이 1만원 안팎이지만 병원들은 10만∼40만원대에 팔아 폭리를 취했다.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진료차트도 작성하지 않고 현금만 받았다. 일부 병원 간호사들은 중독자에게 뒷돈을 받고 투여 순서나 양을 조절했다. 일부 중독자는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전전하며 돈을 벌어 1년에 2억∼3억원을 약값으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의사는 본인이 중독돼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기도 했다.

프로포폴은 부작용을 억제하는 해독제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2000∼2009년 34건의 프로포폴 관련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 적발된 병원 중 일부는 비용절감을 위해 1회용 주사기를 수차례 사용해 상습투약자 여러 명이 C형 간염에 걸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프로포폴이 신종 마약처럼 사용된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만큼 지속적으로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청은 프로포폴을 내년부터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지정해 관리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김정현 노석조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