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아버지 전상서

입력 2010-09-19 21:46


아버지, 귀향길에 나서지 못하는 딸년은 명절만 되면 아버지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전라도 여자가 경상도 남자한테 시집와 외며느리 노릇 하다 보니 올 추석에도 아버지께 성묘 드리러 가지 못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가에 물기부터 올라옵니다. 언제까지나 저를 돌봐주시고 간섭하여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황망히 떠나가시고, 어느 날 운전을 하는데 아버지 뒷모습과 너무 닮은 앞차의 운전자를 무작정 한참 따라가 본 적도 있답니다. 죽음이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고,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고, 오직 느낄 수만 있는 것이네요.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아버지랑 나란히 서울에서 돌고 돌다가 우리 시골 극장으로 내려온 낡은 필름으로 상영되는 영화를 참 많이 보았지요. 비가 내리는 흑백 필름의 ‘맨발의 청춘’ 영화를 볼 때 몰래 눈물을 훔치시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를 옆에서 훔쳐보는 것이 공연히 죄송해서 2층 영사실 작은 구멍을 통해 흐르고 있는 뿌연 먼지 빛을 잡으려 발돋움하고, 아버지께서는 쪼그만 게 사랑 이야기만 좋아한다며 꿀밤을 먹이셨지요. 극장 집 큰딸이 버려진 영화 필름 조각들을 주어서 햇빛에 비춰보았던 ‘아낌없이 주련다’의 이민자, ‘독 짓는 늙은이’에 나오는 윤정희를 기억합니다. 아버지를 추억하듯이….

삼킬 듯이 물고 부시던 하모니카 소리도 그립고,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내시던 전자기타 연주도 보고 싶습니다. 단골 다방에 자주 데려가셔서 아버지는 계란 노른자를 띄운 커피를 드시고, 제겐 항상 우유 한 잔을 시켜주셨지요. 그런데 마담 아줌마가 저를 맞은편 자리로 가게 하고 아버지 옆에 앉는 것이 참 싫었어요. 그 청자다방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니 추억은 지나고 나면 금덩어리라는 말이 맞나 봅니다.

‘나는 야당도 여당도 아니고 인간당이다!’라고 하셨던 아버지는 사람을 좋아하시고 사람들도 많이 따랐지요. 아버지와 길을 걷다 보면 항상 여러 번 악수를 나누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금도 제 친구들이 말해요. 거리에서 아버지를 만나 인사 드리면 그냥 보내는 법 없이 꼭 빵집 같은 데 데리고 들어가셨다고요. 엄마는 저한테 꼭 하는 짓이 퍼주기 좋아하는 지 아버지 닮았다고 그러셔요. 하지만 나눌 수 있음을 감사하고 ‘사랑은 최고로 예우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던 아버지의 딸인걸요.

아버지, 저 어릴 적 못생겼다고 별명이 모과였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아주 크고 미끈한 모과 두 개를 가져오셔서는 모과도 이렇게 예쁜 과일이라고 보여주시면서 아버지가 좋아하던 여학생 이름이 사실은 ‘애옥’이었다고 고백하셨잖아요.

아버지, 아버지가 사시는 동안에 철부지 큰딸년은 아버지를 다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누구를 단정지어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깊은 사랑만을 기억하며 아버지, 이 글로 대신하여 성묘를 드립니다. 저의 아버지로 살다 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애옥 동아방송예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