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34) 왕비 무덤에서 나온 신라 금관
입력 2010-09-19 17:16
화려한 장식의 금관이 여성의 무덤에서 나왔다면? 1975년 경북 경주시 황남동에서 신라시대 고분 황남대총(皇南大塚)이 발견됐습니다. 남북 길이 120m, 높이 22m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분이랍니다. 조사 결과 황남대총은 두 개의 무덤이 합쳐진 표주박 모양의 부부 쌍분으로 남쪽에는 왕인 남자의 무덤, 북쪽에는 왕비인 여자의 무덤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왕의 무덤에서는 격이 낮은 금동관이 출토되고 왕비의 무덤에서는 장식이 뛰어난 수준 높은 금관(국보 191호)이 발굴돼 의문을 남겼답니다. 높이 27.5㎝, 아래로 늘어뜨린 드리개(수식) 길이가 13.0∼30.3㎝인 왕비의 금관은 이마에 닿는 머리띠 앞쪽에 出자형을 연속해서 3단으로 쌓아올린 장식을 3곳에 두었고, 뒤쪽 양끝에는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2곳에 세웠습니다.
푸른 빛을 내는 굽은 옥을 出자형에는 16개, 사슴뿔 모양에 9개, 머리띠 부분에 11개를 각각 달아 화려함을 돋보이게 했지요. 신라 금관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이 금관은 어떤 연유로 왕비의 무덤에서 나온 것일까요. 이 무덤의 주인이 여왕이었다면 수수께끼가 쉽게 풀리겠지만 남쪽 고분은 함께 출토된 유물로 보아 왕의 무덤이 틀림없었거든요.
남자의 무덤에서는 금관이 아닌 금동관이 출토됐으나 금 허리띠(보물 629호)와 화려한 칼 등 신라시대 왕이 사용하던 장신구가 대거 쏟아져 나왔답니다. 왕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면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고고학자들은 남자의 무덤 주인공을 세 명의 마립간(麻立干·신라시대 임금의 칭호) 중 한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에 대한 학설은 1980년대에는 눌지 마립간(재위 417∼458년), 90년대에는 내물 마립간(재위 356∼402년), 2000년대에는 실성 마립간(재위 402∼417년)으로 엇갈리는 등 의견이 분분했지요. 고대기록에 따르면 실성왕의 키가 7척5촌(180㎝ 가량)으로, 출토된 금동관 끝에서 허리띠드리개 맨 끝까지 길이(181㎝)와 비슷하기 때문에 실성왕이 주인공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2만2000여점의 유물을 쏟아낸 황남대총에 얽힌 수수께끼는 또 있습니다. 고분이 조성된 지 1500년이 지나도록 어떻게 도굴되지 않고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죠. 무덤 구조와 연관이 있다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당시 마립간 무덤은 나무 틀 위에 돌무더기를 쌓는 적석목관분이기 때문에 위치 파악과 도굴이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황남대총 이후 신라 무덤에서는 황금 유물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마립간의 등장으로 상대 우위를 드러낼 상징이 필요했고 그에 부합하는 것이 금이었지만, 마립간이 없어진 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0월 31일까지 ‘황금의 나라 신라왕릉 황남대총’ 특별전이 열립니다. 신라시대의 미스터리를 찾아나서는 역사 속 여행으로 떠나보시죠.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