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채권단, 현대그룹 여신규제 중단”… 기업 재무구조개선 약정 논란 커질듯

입력 2010-09-17 22:17

법원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둘러싼 현대그룹과 외환은행 등 채권단 간 공방에서 일단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금융제재에서 벗어나게 돼 현대건설 인수 추진에 힘을 받을 전망이다. 또 금융권이 운용해온 재무구조개선 약정제도 자체도 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은행은 기업의 판단 존중해야”=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판사 최성준)는 17일 현대상선 등 현대계열사 10곳이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 등 채권단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신규여신 중단 및 만기여신 회수 등 채권단의 공동제재는 효력이 중단됐다.

재판부는 “은행법 감독규정 등에는 채권은행들이 공동 제재를 취하도록 강제하거나 이를 허용하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면서 “채권은행이 법률 근거 없이 기업의 경제활동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경영 악화를 극복하는 방안은 원칙적으로 기업이 자유롭게 결정할 사항”이라며 “기업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채권단은 현대 계열사들의 경영 상황이 호전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오로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기 위해 공동제재를 결의했다”면서 채권단의 공동제재가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관례적으로 이뤄져오던 채권단의 공동제재 조치가 과도한 규제임을 인정한 것이어서 향후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이 기업들에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을 강제할 주요 수단을 잃게 되면서 제도 운용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재무구조 평가가 업종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제도 존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법원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제도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어서 관련 규정을 정비하면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현대건설 인수전 탄력=신규여신 중단 조치 등으로 숙원사업이던 현대건설 인수전에 먹구름이 드리웠던 현대그룹은 이날 법원 결정에 환호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법원 결정으로 금융제재의 악재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으로 비춰졌던 그룹 이미지도 바로 세울 수 있게 됐다”면서 “무엇보다 현대그룹 인수전에 걸림돌이 됐던 금융 제재조치가 제거돼 추진과정에서 탄력을 받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채권단의 공동제재가 아니라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제도에 대한 문제”라며 “빠른 시일 내에 채권은행협의회를 개최해 가처분 결과에 대한 불복절차 진행 여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자 지난 7월 초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만기가 도래한 여신을 회수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현대그룹은 “올해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내고 있는데도 채권단이 부실기업으로 몰고 있다”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