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北 군량미 100만t 비축 진실은… 대북 지원 쌀 250만t 중 전용 의혹

입력 2010-09-17 21:54

북한이 100만t 이상의 쌀을 군량미로 비축하고 있다고 정부가 확인함에 따라 파문이 커지고 있다. 최근 불거진 대규모 대북 쌀 지원을 둘러싼 논란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7일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전날 의원총회에서 “북한이 전쟁 비축미로 100만t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사실은 그것보다 더 많다. 대략 100여만t 정도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우리가 쌀을 주면 쌓아두고, 대신 기존에 비축했던 것을 푸는 방식을 써왔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북한의 군량미 규모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민주당 박지원 비대위 대표는 “근거가 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 정보위에서도 군량미 100만t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고, 그런 통계를 가진 곳조차 없다”고 반박했다.

북한은 전국 곳곳에 있는 전용 창고에 군량미를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량미 100만t은 1인당 하루 쌀 소비량 500g을 기준으로 할 때 북한 인구 2300만명이 3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또 북한 정규군 119만명에게 4년 7개월 동안 배급할 수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에 이어 정부 관계자까지 나서 군량미 100만t 비축설을 흘리는 것은,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대규모 대북 쌀 지원 주장의 견제용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쌀 옥수수 등을 모두 합한 북한의 지난해 식량 생산량은 410만t이었고, 매년 50만~130만t의 식량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도 군량미 100만t을 비축해 놨다는 것은 과거 정부가 지원한 쌀이 굶주린 북한 주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군량미로 전용됐음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2009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기아 인구는 750만명으로 군량미 100만t을 이용하면 9개월 동안 배급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대규모 대북 쌀 지원에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전날 국회 예결위 회의에서 “과거 인도적 지원이라면서 대규모 식량지원을 누차 했지만 분배 투명성이 보장되지 못한 것 같다”며 “대규모 식량지원은 인도주의 차원과 별개”라고 말했다.

정부가 2000~2007년 북한에 지원한 쌀은 총 250만t이며, 연간 40만t 정도를 차관이나 무상원조 형식으로 제공했다. 차관 형태로 쌀을 지원할 경우 분배 투명성을 검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논리상으로는 북한이 우리가 보낸 쌀 40만t을 활용해 매년 묵은 군량미를 상당수 교체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울러 정부가 군량미 100만t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이산가족상봉 제안 등 최근 북한의 대남평화공세 전략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천안함 사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십만t 규모의 쌀 지원은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당내에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