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자활 돕는 ‘빨강마차’ 1호 출발
입력 2010-09-17 18:16
고소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침이 저절로 고였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렸다.
요리사 모자를 쓰고 깨끗한 흰 와이셔츠에 빨간 리본 넥타이를 맨 신사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흰 장갑을 낀 손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풀빵 틀을 열어젖히자 ‘금빛 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빨강마차 빵’이다.
오는 10월 11일 본격 출시를 앞두고 1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서울 디자인 한마당’에서 빨강마차 1호점이 선을 보였다.
빨강마차는 구세군 ‘서대문사랑방’과 명품 주방기기를 만드는 한 외국계 회사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작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사들이 빨강마차 빵의 재료와 배합비율 등 레시피를 개발했다. 노숙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빨강마차 1호점을 운영하게 된 박신(52)씨도 전직 노숙인이다. 박씨는 풀빵을 굽느라 하루 종일 불 옆에서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시식용 풀빵을 건네며 맛은 어떤지, 혹시 개선할 점이 있는지 손님들의 반응을 체크했다. 이렇게 땀 흘려 일하기는 10년 만에 처음이라는 박씨는 “올해 추석은 어렵겠지만 내년 추석에는 그동안 떨어져 지낸 아들과 딸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그만둔 박씨는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빚을 져 야반도주하는 신세가 됐다. 처음에는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신문 배달을 하는 등 열심히 일했지만 불규칙적인 생활로 몸이 서서히 망가졌다. 40대 중반에 퇴행성관절염과 허리디스크를 앓으면서 그의 생활은 더욱 빈곤해졌다. 2년 전 서대문사랑방에 입소한 뒤 그의 생활은 안정됐다. 이제는 빨강마차를 통해 자립 의지를 키우고 있다.
박씨는 “돈을 벌게 되면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적은 돈이지만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빨강마차 수익금의 5%는 실직자 지원기금으로 사용된다. 구세군은 빨강마차를 100대까지 늘리고 메뉴로 떡꼬치와 길쌈 등을 확충해 노숙인들의 자활을 지원할 계획이다.
구세군 서대문사랑방 김도진 사무국장은 “명품 주방기기 제조업체가 빵 굽는 틀과 기름 솥, 뒤집개 등 주방소품 일체를 제공했고 빨강마차 사장님들은 철저한 위생 및 예절교육을 받았다”면서 “노숙인이 만들어 판매하면 자칫 위생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은 버려도 좋다”고 말했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