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군량미 100만t 쌓아두고 손 벌리다니
입력 2010-09-17 18:06
민간 대북지원단체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이 어제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북한에 쌀 203t을 전달했다. 신의주 지역의 수재민 구호를 위해 민간단체가 보내는 것이지만,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첫 쌀 지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북한에 지원하기로 한 쌀 5000t도 곧 전달될 예정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될 터이니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민간단체나 적십자사를 통한 지원과 정부 차원의 대규모 쌀 지원은 별개의 문제다. 과거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거의 매년 40만∼50만t씩 대규모로 북한에 쌀을 보냈지만 이 쌀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7차례 북한에 보낸 쌀 240만t이 대부분 차관 형식으로 지원돼 모니터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 가운데 남한 쌀을 배급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열 명 중 한 명도 안 되는 사실에 미루어 대북 지원 쌀이 주민 식량난 해결과는 무관한 엉뚱한 곳에 쓰였을 것으로 짐작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엊그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북한이 전쟁에 대비해 비축한 쌀이 100만t에 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북한 주민의 식량난과 연간 곡물 생산량 등을 감안할 때 비축 군량미의 대부분은 남한에서 받은 것을 빼돌린 게 분명하다. 쌀 100만t은 북한의 전체 주민 2300만명이 3개월간 먹을 수 있는 물량이다. 이를 군인들에게만 준다면 북한 정규군 119만명에게 4년7개월간 배급할 수 있다고 한다. 올해 국내 쌀 재고량 149만t과 비교해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대북 쌀 지원은 우리 안보와 직결된 문제다. 국내에 쌀이 남아돈다고 해서, 또 북한이 남북이산가족 상봉 등 유화적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무턱대고 쌀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 민간단체나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 인사들까지 “이왕 줄 거면 화끈하게 주자”고 나서는 등 선심 쓰듯 접근할 일이 아니다. 여권 내부의 중구난방 식 논의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도록 당정간 조율이 필요하다.